한국일보

돌연사 부르는 심방세동… 한 시간도 안 돼 시술 ‘끝’

2025-01-21 (화) 12:00:00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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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 조직 손상 기존 방법과 달리

▶ 목표만 사멸시키는 펄스장절제술
▶ 작년부터 국내 주요 병원 속속 도입

“고주파전극도자절제술(RFCA)로 병원 예약을 해놨는데, 펄스장절제술(PFA)로 바꿔야 하나 생각 중이에요. 이제 막 국내에 도입됐지만, 수술 과정에서 조직 손상이 덜하고 부작용도 크지 않다고 하니 고민이죠.”(심방세동 환자 임모(37)씨)

돌연사 위험을 높이는 심방세동을 보다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는 펄스장절제술이 국내 병원에 속속 도입되고 있다. 기존 고주파전극도자절제술보다 시술 시간이 짧고 부작용은 적어 환자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부정맥 중에서 가장 흔한 심방세동은 심장의 심방이 제대로 수축하지 못하고 가늘게 떠는 질환이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어지럽고 숨이 차는 증상이 나타난다. 심장이 혈액을 제대로 내보내지 못해 생기는 심장 내 혈전(피가 굳어진 덩어리)은 심각한 2차 피해를 불러온다. 심방 벽에 붙어 있던 혈전이 떨어져 혈관을 타고 움직이다가 뇌혈관을 막게 되면 뇌졸중을 앓게 된다. 심방세동이 있으면 뇌졸중 발병 위험이 5배 안팎 높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혈전이 다른 부위의 혈관을 막으면 그 위치에 따라 여러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심방세동은 두 가지로 구분한다.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발작성 심방세동과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만성 심방세동이다. 발작성 심방세동 환자의 약 30%는 수년 내 만성 심방세동을 앓게 된다. 대한부정맥학회에 따르면 국내 심방세동 유병률은 2013년 1.1%에서 2022년 2.2%로 10년 동안 2배 늘었다. 심방세동 발생률은 같은 기간 약 1.5배 증가했다. 급속한 고령화로 향후 심방세동 환자는 가파르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심방세동은 약물이나 고주파전극도자절제술 등으로 치료를 해왔다. 고주파전극도자절제술은 고주파로 열을 가해 심방세동 발생 조직을 절제하는 시술이다. 심근 조직 주변에 열에너지가 전달돼 혈관과 신경 등이 손상될 수 있다는 게 단점으로 꼽혔다. 국내에서 최근 도입된 펄스장절제술은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한 게 특징이다.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최의근 교수는 “펄스장절제술은 심방세동 치료에 중요한 진전을 이룬 기술”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초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펄스장절제술은 현재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 심방세동 치료에 쓰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 12월 13일 펄스장 절제술을 신의료기술로 발표했다.

펄스장절제술은 고에너지 전기(펄스)를 이용해 목표로 삼은 심근세포만 선택적으로 없앨 수 있다. 좌심방 내 폐정맥 입구에 특정 관을 삽입한 후 전기장을 발생시켜 심방세동 유발 부위를 제거하는 식으로 시술이 이뤄진다. 소요 시간이 기존 방법보다 20~40% 이상 줄어들 뿐 아니라, 횡격막 신경 손상 등 부작용도 거의 없다는 게 특징이다. 최근 펄스장절제술 관련 임상 연구 결과를 보면 해당 시술을 받은 환자의 87.9%가 1년 동안 정상 심장 박동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작성 심방세동 환자의 90.8%가 정상 박동을 유지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정보영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고령 환자가 늘어나는 만큼 더 많은 환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펄스장절제술은 현재 삼성서울병원·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세브란스병원·중앙대광명병원 등에서 도입했다. 앞서 지난달 19일 세브란스병원은 심방세동 진단을 받은 환자 권모(53)씨를 대상으로 펄스장절제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권씨는 2003년 심방세동 진단을 받은 후 약물치료에도 불구하고, 두근거림과 답답함 등 지속적인 부정맥 증상을 앓아왔다. 당일 권씨의 시술은 한 시간도 안 돼 끝났다. 같은 날 삼성서울병원도 펄스장절제술을 시행했고, 이튿날 서울아산병원에선 발작성 심장세동을 앓는 70대 환자 김모씨도 펄스장절제술 시술을 받은 뒤 당일 퇴원했다. 그는 평소 심한 두근거림 증상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정도였으며 과거 뇌졸중도 앓은 적이 있었다.

이달 들어선 국내에서 처음으로 ‘방사선 제로(0)’의 펄스장절제술도 이뤄졌다. 앞서 14일 임홍의 중앙대광명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심장 내 초음파를 이용해 ‘방사선 제로 펄스장절제술’을 성공했다고 밝혔다. 종전 방법으로 심방세동 시술 시 환자에게 노출되는 방사선 조사량은 약 15mSv(밀리시버트)로, 연간 노출되는 자연 방사선량(2.4mSv)의 약 7배에 해당한다.

임 교수는 “펄스장절제술은 기존 심방세동 시술의 부작용을 보완할 뿐 아니라 유일한 단점인 방사선 피폭량도 없앨 수 있어 심방세동 치료에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고가의 진료비는 부담이 될 수 있다. 현재 시술비용은 1,600만 원 안팎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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