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퍼시픽 펠리세이즈의 욥

2025-01-21 (화) 12:00:00 민경훈 논설위원
크게 작게
착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왜 나쁜 일이 일어나느냐는 인생의 가장 큰 미스터리의 하나다. 전지전능하고 선한 유일신을 믿는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 문제에 대한 명상의 깊이에 있어 ‘욥기’를 능가하는 것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토머스 칼라일은 “성경 안팎을 통틀어 욥기만 한 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은 없다”고 말한바 있다.

욥은 우스 땅에 사는 의로운 인물이다. ‘욥기’에는 그가 7명의 아들과 3명의 딸, 7천마리의 양과 3천 마리의 낙타를 가진 부자로 나온다. 히브리 인들이 좋아하는 숫자인 7과 3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과 같이 있는 자리에 ‘대적자’ 사탄이 나타난다. 하나님이 어디 있다 오느냐고 묻자 사탄은 땅 위를 이리저리 떠돌다 왔다고 답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내 종 욥을 보았느냐며 그처럼 의롭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악을 행하지 않는 자는 없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사탄은 “당신이 그의 손이 하는 것을 복되게 하사 그의 재물이 땅에 넘치나이다”라며 그가 의로운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줬기 때문이고 그를 치면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에 몸에 손을 대지 말 것을 조건으로 사탄이 그를 시험하는 것을 허락한다. 그후 스바 사람들이 욥의 종을 죽이고 양을 빼앗는가 하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양과 종을 불태우고 갈대아 사람들이 종을 죽이고 낙타를 훔치며 돌풍이 불어 집이 무너져 자녀들이 모두 죽는다. 이 소식을 들은 욥은 “주신 자도 야훼요 취하신 자도 야훼니 야훼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어다”라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욥의 믿음을 칭찬하자 사탄은 그의 몸에 손대게 해달라고 해 허락을 받으며 욥의 온몸이 종기로 뒤덮인다. 욥이 재 가운데 앉아 사기 조작으로 몸을 긁는 모습을 본 그의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라고 말하지만 욥은 그래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욥의 소식을 듣고 세 친구가 찾아오나 그들은 하나님이 죄없는 사람을 벌할리 있느냐며 오히려 욥을 나무란다. 그제서야 욥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죄없는 자신을 벌하는 하나님을 비난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회오리바람 속에서 나타나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네가 어디 있었느냐”며 짧은 인간의 지혜로 하나님의 큰 뜻을 재단하는 욥을 책망한다. 이에 욥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빈다. 하나님은 욥의 결백을 인정하고 오히려 욥을 비난한 친구들을 꾸짖는다. 그 후 하나님은 양 1만4천과 낙타 6천 마리(원래의 2배)를 주며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도록 해 자녀 수도 원상회복 해주고 욥은 140살까지 천수를 누리다 죽는 것으로 끝난다.

이 이야기는 얼핏 보기에는 모든 게 잘 끝난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문제의 핵심인 선한 사람이 왜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만족할만한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머리로 하나님의 생각을 헤아리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답인데 대다수는 이를 만족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불완전하며 불공평한 곳임을 확인시켜줄 뿐이다.

유대교에서는 세상의 불완전함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 불완전한 곳을 보다 완전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책무라고 가르친다. ‘세상을 고쳐라’(Tikkun Olam)가 유대교의 핵심 계명인 것은 그 때문이다.

최근 남가주 일대에서 일어난 미 역사상 최대 산불로 24명이 사망하고 주택 등 1만2천여채가 불타는 재난이 발생했다.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LA의 대표적 부촌이던 퍼시픽 팰리세이즈의 고급 주택들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한 모습은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들꽃과 같다. 풀은 시들고 꽃은 지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베드로 전서 1장 24절)는 성경 말씀을 떠오르게 한다.

이번 산불이 난 지역 사람들이 다른 지역 사람보다 악을 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늘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머리 위에 똑같이 비를 내리듯 재난도 선인과 악인을 구분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재난만이 아니다. 교통 사고도, 범죄도 암과 심장병 등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산불 위험 지역의 개발을 억제하고 소방 시설을 강화하며 범죄와 질병의 위협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이번 산불은 인간이 가진 모든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취약하며 덧없는 것인가를 깨닫게 해주고 있다.

<민경훈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