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 아름다운 우리나라 미국(美國)이여!

2025-01-14 (화) 08:00:03 허종욱 전 볼티모어대교수 사회학박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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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에서 미 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Ameruica)을 왜 아름다운 나라의 뜻을 가진 美國이라고 한자로 표기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 표기는 고종 3년(1866) 부산진에 들어 온 미국 상선에 대한 부산 첨사의 필답보고서에 처음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 당시 중국 청나라가 사용하고있던 美國의 표기를 따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그 전에는 일본이 표기해 왔던 쌀이 많이 나는 나라라는 뜻의 米國을 사용했었다. 아무튼 미국에 60여년 살아오면서 생각해 보니 美國이 米國보다 훨씬 적절한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지난 9일 오전 지미 카터 전 대통령(1077-1081 재임)의 천국환송예배로 드려진 국장이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 거행되는 장면을 2시간 동안 TV를 통해 지켜보면서 내가 살고 있는 우리나라 미국은 정말 아름다운 나라(美國)라는 사실을 다시 확신하게 되었다.


이날 환송예배 순서는 기독교 신앙의 기초로 건국된 미국답게 기도와 찬송으로 일관되게 진행되었다. 예배를 참석한 조문객들이 자리를 꽉 메운 직후 전직 대통령들이 안내원을 따라 둘째 앞줄 자리에 앉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 부부 옆 자리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부부,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 그리고 맨 앞자리에 조 바이든 대통령 부부가 안내되었다. 그리하여 정당이 다르고 정치노선이 서로 다르며 재임 시절에 갈등을 빚었던 전현직 대통령 5명이 자리를 같이 하여 옛날은 뒤로 하고 웃음으로 서로 농담을 건네는 장면을 보면서 나라 이름처럼 우리나라 미국의 아름다운 진면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더구나 정당이 다를 뿐 아니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오바마 전 대통령과 바로 옆자리에 앉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죽마고우처럼 대화하는 모습, 공화당 부시 전직 대통령이 민주당 오바마 전직 대통령의 배를 오랜 친구처럼 툭툭 치는 모습, 트럼프 당선자가 퇴임 후 ‘원수지간'이 된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과 웃으면서 악수하는 장면, 2000년 대선에서 격렬한 선거전을 치렀던 공화당 후보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민주당 후보 앨 고어 당시 부통령이 서로 포옹하는 모습 등,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들인가?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무엇보다도 제리 포드 전 대통령(38대)이 2006년 93세로 사망하기 전에 준비했던 카터 전대통령(39대)의 추모사를 그의 셋째 아들 스티븐 포드(68)가 읽는 장면이다. 1976년 대선에서 카터와 포드는 선거전을 펼치면서 ‘상대방이 대통령 자격이 없다'라고 성토를 하면서 서로 치열하게 비방했었다. 두 전 대통령은 은퇴한 후 옛날 일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친구 사이가 되었다.

2006년 12월 26일 카터 전 대통령은 먼저 간 포드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서로 나누었던 우정을 담은 추모사를 읽었다. 카터의 추모사를 듣고 있던 조문객들은 그가 털어놓은 포드와의 우정관계에서 일어난 일화들에 대해 폭소를 던졌다. 나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고국 대한민국에서는 이러한 아름다운 풍경을 왜 찾아 보기 힘든가 라고 반문을 해 보기도 했다.

전직 대통령들 사이에 정적으로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해오다가 화합, 양보, 용서를 통해 아름다운 우정을 유지하여 후대에 아름다운 전통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두 대통령이 있다.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로 존경받는 존 아담스 제2대통령과 토마스 제퍼슨 제3대 대통령이다.

두 대통령은 1826년 7월 4일 독립 50주년 기념일 같은 날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 행정부의 부통령을 지낸 아담스 대통령은 90세, 그리고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제퍼슨 대통령은 83세였다. 당쟁과 지역감정으로 두 대통령은 현직에서나 은퇴 후에도 서로 비방하고 등을 돌렸다. 제퍼슨은 워싱턴 행정부에서 초대 국무장관을 지냈다. 이때부터 두 대통령사이는 원수지간이었다. 1976년 대선에서 아담스는 제퍼슨을 누르고 제2대 대통령에 당선됐고, 1800년 대선에서는 제퍼슨이 아담스를 누르고 제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아담스는 제퍼슨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아담스는 은퇴 후 1812년 제퍼슨에게 편지로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제퍼슨은 아담스의 제안에 곧 응답했다. 그들이 화해한 근본적인 배경은 민주주의에 대한 사랑이었다.

두 전직 대통령은 숨을 거둘 때까지 우정의 편지를 수천 통 교환했다. 그들의 편지는 정치적인 이야기 뿐 아니라 가족, 건강, 과학, 철학, 현실과 미래에 관한 이야기 등 다방면이었다. 미국의 역사는 이를 두고 '세기적인 우정'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들의 편지는 ‘아담스-제퍼슨의 서한집(The Adams-Jefferson Letters: the Complete Correspondence Between)’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어 미국 정치사 역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허종욱 전 볼티모어대교수 사회학박사,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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