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중순즈음, ‘서울 재동의 백송(白松)’이 참으로 근사하다고 하여 헌법재판소 경비실에 백송을 보러 간다 말하고 안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후원으로 가면 백송이 있다.
조선시대 중국을 오간 사신에 의해 들어온 백송은 옮겨심기가 어려운데 이곳의 백송은 대한민국 최고령 600년 된 소나무다.
높이 15미터, 밑부분 줄기 둘레 3.8미터의 거대한 나무의 몸통과 줄기가 모두 새하얀 것이 천상의 나무 같았다. 흰 얼룩무늬 소나무껍질에 탄성이 절로 나왔는데 그때만 해도 백송이 있는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탄핵사건번호 ‘2024 헌나8’ 심판을 맡아서 전 국민은 물론 세계인들에게 관심의 촛점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다음날인 15일 오전에 그 앞을 지났는데 아직 시위대 모습은 보이지도 않는데 대형 경찰 버스 열다섯 대 이상이 안국동 사거리와 헌재 앞 북촌 방면 도로변에 줄지어 서있었다. 헌재 앞은 물론 안국역 출구마다 경찰들이 서있고 헌재 담벼락 앞에는 찬반을 나타내는 커다란 화환들이 놓여있었다.
그 이후 세종대로, 경복궁 동십자각, 헌재 앞, 곳곳에서 범국민 촛불 대행진은 대통령 탄핵 인용 촉구를 주장하고 보수단체는 탄핵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북촌 한옥마을 가는 길에 헌재가 있다 보니 한복 입은 외국인들은 난감해하며 지나가기도 한다.
탄핵 인용 가부를 결정할 헌법재판소 재판관 6인 체제하에서 여야의 이해득실 계산으로 점점 탄핵 기일이 늦춰질 전망이다.
광화문 광장에 연말연시 기프트 축제가 열리고 청계천에는 빛초롱 축제가 막을 올렸지만 정작 이순신 동상 인근에 서있는 사랑의 열매 ‘나눔 온도’(12월 14일 현재 27.4도, 기부로 나를 가치있게, 기부로 세상을 가치있게)는 좀처럼 올라가지 않고 있다. 탄핵 정국 아래 연말연시 특수는 실종되고 불우이웃을 위한 기부금 모금 속도가 좀처럼 불붙지 않는 것이다.
서촌 사는 친구는 확성기 소리가 경복궁 지나 청와대 앞까지 왕왕 울린다면서 이사가고 싶다고 하고 북촌 사는 친구는 버스가 돌아가거나 도로 하나만 사용하기에 불편하다고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바로 서기 위해서 이런 불편쯤이야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이 벌어지는 것이다. 친구와 밥을 먹다가 어느 한쪽을 강하게 편들때 내 주장을 하면 서로 원수가 될 테니 당분간 만나지 말자 하게 되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의 생각을 모르니까 어느 쪽에 참여했다고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지는 것이다.
서로 편하게 들어주고 ‘어, 너 생각은 그러니 내 생각은 이렇다’ 터놓고 말하기가 두려운 세상, 서로 생각이 다르다고 결사적으로 미워하고 있는 현실이다.
광화문에 나갔다가 북소리가 둥둥 나면서 “밟아라 밟아, 밟아라 밟아.” 하기에 “뭔 소리야?” 하고 가까이 가보니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70~80 된 어르신들이 자신들이 적대시하는 인물의 사진에다 대놓고 그러는 것이었다. 국회 앞에서는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 꽃 같은 젊은이들이 맨바닥에 앉아서 응원봉을 흔들고 노래하며 윤석열을 탄핵하라고 외치는데 마치 놀이처럼 즐기고 있었다.
헌법재판소 백송 바로 옆에 ‘제중원 터’ 표지석과 ‘박규수 집터’ 표지석이 있다. 1885년 미 선교사 앨런이 고종의 윤허를 얻어 서양식 병원 제중원을 개원한 곳이다. 또 연암 박지원 손자인 박규수는 1866년 대동강까지 올라와 통상을 요구한 미국 제너럴 셔먼호를 격침시킨 당시 평안 감사였다.
특히 헌재는 신정왕후(훗날 조대비)의 친정으로 이하응(흥선대원군)이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를 종식시키고 왕권을 강화하려고 수없이 드나들던 곳이었다.
이때 흥선대원군은 백송의 밑둥이 평소보다 더욱 희게 되자 길조라고 보고 성공을 확신했다고 한다. 백송의 밑둥이 궁금한데 경찰이 겹겹이 지키고 있어 쉽지 않다.
멀리 철망너머로 백송을 보자니 윗부분만 보여 알 수가 없다. 한국 근대사의 격변을 지켜본 백송으로 앞날을 짐작하려 하다니 이 얼마나 말이 안되고 불확실한 가. 한국의 앞날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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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