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셔에서] 사랑의 춤을 추는
2025-01-02 (목) 12:28:44
성민희 수필가
그들의 춤추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는 킥 웃었다. 부부 싸움을 하는 중인가? 허리를 굽히고 엉덩이를 뒤로 쭉 뺀 여자와 머리를 숙인 채 두 팔을 뻗어 간당간당 그녀를 끌어안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옆에서 보면 영락없는 소문자 h다. 앙탈 부리는 아내를 억지로 붙잡아 달래느라 얼마나 힘이 들까. 70은 족히 넘어 보이는 노년의 나이에도 남편 속을 긁느라 저러는 걸 보면 한국이나 미국이나 사람 사는 모양은 똑 같구나 싶어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신나는 폴카곡이 끝나자 호기심에 돌아다본다. h자 부부는 여태도 엉거주춤한 모습 그대로다. ‘아직도 맘이 안 풀렸나? 여자 고집이 참 세기도 하네.’ 곁눈으로 슬쩍 흉을 보니 싸운 사람들의 표정이 아니다. 허리가 90도로 굽은 꼬부랑 아내를 하얀 머리의 남편이 조심스레 감싸 안으며 춤을 추어주고 있다. ‘추어주고 있다’는 표현이 정말 맞다.
몇 년 전 남편 회사의 크리스마스 파티에서였다. 칵테일을 들고 밝게 웃는 여자의 허연 등판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는 지퍼 사이로 까만 브래지어 끈이 가로로 선을 긋고 있으니 내가 도로 민망했다. “당신 등 뒤에 ---.” 손을 입에 대고 조그맣게 속삭이는데 “하하하, 지퍼가 고장 났어요.” 그녀의 남편이 주위에 다 들리게 큰소리로 말했다. 섹시하지 않느냐며 아내의 등을 개구쟁이처럼 톡톡 두드리기까지 했다. 아내의 즐거움에 비하면 창피한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제스처였다. 마주보고 킬킬대는 그들의 사랑이 예쁘기도 하고 은근히 부럽기도 했다. 외국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가끔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지는 부부를 만날 때가 있다. 무늬만 부부, 쇼윈도우 부부라는 단어는 도저히 있을 수가 없다. 그들은 생활 자체가 사랑의 표현이다. 아니, 정말 사랑하며 살고 있다.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 대법관 샌드라데이 오코너는 동갑내기 남편과 법조인 부부로 평생을 잘 살아왔는데, 치매에 걸린 남편이 양로병원에서 만난 낯 선 할머니와 사랑에 빠진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행복하다고 했다. ‘바람난 남편? 괜찮아!’ 수 년 전 신문 기사를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했다. 인내의 시작과 끝은 사랑이라고 했던가. 서로를 위해 끊임없이 인내하고, 수고하고 희생해주는. 그런 일상의 온기가 세월 속에 스민 부부의 사랑은 얼마나 무겁고 깊고 한편 향기로울까 싶었다.
40 여 년 전, 나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푸석푸석 먼지 이는 작은 텃밭을 둘이서 함께 들여다보며 물도 자작하게 뿌리고 햇살도 받아 부으며 도란도란 삶을 심어갔는데. 어느새 그 작은 텃밭은 꽃도 피고 열매도 맺는 과수원이 되었다. 때론 비바람에 마음 조리기도 했고 터지는 꽃망울에 환호하기도 한 시간. 돌아보면 그림 한 장을 넘긴 것 같다.
또 한 해가 시작됐다. 노을 진 나의 정원에 다시 환희로 빛나던 순간만 다복하게 피어나면 좋겠다. 숨어있는 상처를 톡톡 건드리는 가지는 잘려나가고, 고맙고 측은한 마음만 정원에 가득하면 좋겠다. 그렇게 가지치기가 잘 된 영혼의 정원에서 꼬부랑 아내와 하얀 머리의 남편일지라도 손끝을 마주잡고 빙글빙글 사랑의 춤을 출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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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희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