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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무안 공항 참사, 막을 수 없었나’

2024-12-31 (화) 09:04:52 채수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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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명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간 전남 무안 공항 항공기 참사는 가뜩이나 계엄정국으로 어수선한 한국 사회에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다주었다. 이번 사고 희생자의 대부분은 크리스마스를 태국에서 보내기 위해 가족이나 친지단위로 여행을 떠났던 한국인들이었다.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신부, 부모님의 팔순을 기념하기 위하여 효도관광을 떠났던 일가족, 친목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마을 아낙들, 젊은 공무원들과 간호사, 교사, 세살배기 어린아이까지⋯. 불의의 사고로 희생된 사람들과 슬픔에 잠긴 유가족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오랫동안 항공사에 근무했던 필자는 TV 화면에 수없이 되풀이되는 사고 당시의 끔찍했던 영상을 보면서 이번 사고는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던 인재(人災)였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 더욱 안타까웠다.


정확한 사고원인 규명을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새떼가 오른쪽 엔진에 빨려들어가면서 엔진고장을 일으켰고 랜딩기어마저 나오지 않아 동체착륙을 시도하던 중 기체 앞부분이 활주로 끝에 있는 시멘트 블록 벽을 고속으로 충격하면서 기체가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으로 되어있다.

앞쪽에 타고있던 승객들은 대부분 기체가 폭발할때 포탄의 파편처럼 사방으로 튕겨져 나가 시신을 수습하고 신원확인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고있다고 한다. 불행중 다행으로 꼬리날개 부분에 앉아있던 남녀 승무원 두명은 부상을 입었으나 기적적으로 구출되었다.

B737 항공기는 엔진이 날개 좌우에 하나씩 두개가 장착되어 있는데 그 중하나가 고장나더라도 나머지 엔진 하나로 날 수 있다. 문제는 랜딩기어인데 엔진고장과 함께 유압식으로 작동하는 랜딩기어 바퀴가 안나오더라도 수동으로 랜딩기어를 내릴 수 있도록 되어있다.

사고 당시의 비디오 영상을 보면 랜딩기어도 나와있지 않았고 착륙시 속도를 줄이기 위한 보조날개 플랩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항공기의 감속, 제동장치가 모두 작동이 안되는 위급상황에서 하필이면 왜 전방에 시멘트 방벽이 설치되어 있는 쪽으로 내달렸을까.

잔디밭이나 가까이 있는 무안 앞바다 또는 근처의 영산강에라도 내릴 수는 없었을까. 그리고 착륙 유도장치 로컬라이저 안테나는 왜 시멘트 방벽 위에 설치했을까.
제주항공과 비슷한,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위험했던 상황이 15년전 미국에서도 발생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이번 사고와는 극과 극으로 대조적이었다.

지난 2009년 1월15일 뉴욕의 라가디아 공항을 이륙한 US Airways 1549 편 에어버스 A320 항공기는 이륙 일분만에 새떼와 부딪혀 고도 3000피트 상공에서 두개의 엔진이 완전히 꺼져버렸다.

초속 15미터 속도로 급강하하는 항공기의 조종석에 앉은 ‘설렌버그’ 기장은 절체절명의 다급한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지않고 항공기를 무동력으로 활강하여 허드슨 강에 안전하게 불시착 시킴으로써 155명의 승객과 승무원 전원을 무사히 구출하였다.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조종사와 관제사 그리고 항공 정비사들은 평소 강도높고 철저한 훈련으로 기량을 닦음으로써 안전사고 예방에 만전을 기해야할 것이다.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과 유가족분들께 삼가 조의를 표한다.

<채수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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