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간교하고 지혜로운 뱀의 두 얼굴

2024-12-31 (화) 12:00:00 민경훈 논설위원
크게 작게
포유류 가운데 시력이 가장 좋은 동물은 무엇일까. 정답은 인간이다. 인간은 20/20 비전이 있고 공간 지각력이 뛰어날뿐 아니라 100만개의 색소를 구분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능력을 인간의 조상이 나무 위에서 생활한 덕으로 보고 있다. 나무 위에서는 나뭇가지의 위치를 정확이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자칫 잘못하면 나무에서 떨어져 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지금도 나무에서 사는 원숭이의 가장 큰 천적은 뱀이다. 소리 없이 뒤에서 다가와 발 뒤꿈치를 무는 뱀이야말로 이들의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성경이 창세기에서 뱀에게 인간의 발 뒤꿈치를 무는 저주를 내린 것도 이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원숭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동물이 뱀이라고 한다. 지금도 원숭이 출몰 지역에서 이들을 쫓는 방법으로 즐겨 쓰는 것이 뱀 모형을 만들어 뿌려 놓는 것이다. 단 같은 모형을 한자리에 오래 놔 두면 가짜인 것을 영리한 원숭이들이 알기 때문에 수시로 자리를 옮겨놓아야 한다.

성경은 또 뱀을 인간을 유혹해 타락시키고 낙원에서 추방돼 죽음을 맞게 한 “가장 간교한 동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간교하다”는 구약의 원어인 히브리어 ‘아룸’의 번역인데 이 단어에는 이밖에도 “지혜롭다”는 뜻이 들어 있다. 신약 마태복음 신약 10장 16절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이 나오는데 여기서 “지혜롭고”는 신약의 원어인 그리스어 ‘프로니모이’의 번역으로 이 또한 “현명하다” 외에 “약삭빠르다”는 뜻도 있다.

따지고 보면 “간교하다”와 “지혜롭다”는 한끗 차이로 모두 “어리석다”의 반대말이다. 좋은 머리로 남을 속여 이익을 취할 때는 “간교하다”고 하고 이를 모두의 이익을 위해 쓸 때 “지혜롭다”고 말할 뿐이다. 뱀이 이처럼 양면적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두쪽으로 갈라져 날름거리는 혀가 누구라도 홀딱 넘어가게 만드는 달변가를 연상시켰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뱀의 두 얼굴은 이뿐이 아니다. 뱀을 악의 상징으로 보는 구약에서조차 때로는 치유와 생명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모세5경의 하나인 ‘민수기’ 21장 4절에는 이스라엘인들이 야훼와 모세를 원망하자 야훼가 불뱀을 보내 이들을 물어죽이게 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에 모세가 야훼에게 간구하자 청동으로 뱀을 만들게 하고 뱀에 물린 사람이 이를 보자 상처가 나아 목숨을 건졌다는 것이다.

뱀과 치유, 생명과의 관계는 그리스 신화에서 더욱 뚜렷하다. 여기서 치유의 신은 아스클레피우스인데 그의 상징이 뱀이 감겨 있는 막대기다. 이와 종종 혼동되는 ‘카두세우스’는 뱀 두마리가 엉켜있는 막대기로 헤르메스의 상징이며 지금도 약국 표시판으로 널리 사용된다. 이 모양은 기원전 4천년 숭배되던 수메르의 신 닝기스지다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 또한 의약의 신과 연관돼 있다.

이처럼 뱀이 치유와 생명의 상징이 된 것은 그가 주기적으로 낡은 허물을 벗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고대인들에게 이런 뱀의 모습은 영생불사의 상징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중국 신화에서도 뱀의 이미지는 부정과 긍정이 섞여 있다. 중국 문명의 시조인 삼황오제 중 첫번째로 인간에게 불 사용법을 가르친 복희씨와 그와 남매 사이로 인간을 창조한 것으로 알려진 여와 모두 뱀의 몸을 하고 있다. 이 둘이 서로 꼬리를 감고 있는 모습은 ‘카두세우스’와 흡사하다.


중국 고전에는 ‘주역’에서 ‘영웅호걸도 뱀처럼 땅속에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거나 ‘주례’에서 ‘거북은 지혜롭고 뱀은 과감하다’는 등 뱀의 덕을 칭송하는 구절이 들어 있다.

뱀의 이중적 성격은 한국의 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서정주는 첫번째 시집 ‘화사집’의 ‘화사’에서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면서도 “꽃대님보다 아름다운 빛”이라고 썼고 박인환은 ‘목마와 숙녀’에서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라고 적었다.

새해는 ‘뱀의 해’고 그것도 을사사화와 을사늑약 등 흉한 일이 일어난 을사년이다. 연산군이래 최대 옥사의 하나인 을사사화는 명종 때 대윤과 소윤으로 대립으로 100여명이 죽거나 유배된 사건으로 이때부터 외척의 발호가 시작되었다. 을사늑약은 조선의 후신인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빼앗기고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한 조약으로 그 체결은 한민족 역사상 가장 수치스런 사건의 하나이다. 이때부터 대한제국은 사실상 소멸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뱀의 양면성처럼 을사년이 어떤 해가 될 것인지는 해의 이름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새해를 살아가는 각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간교하기보다 지혜롭고, 물고 뜯기보다 치유와 생명의 한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민경훈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