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갑진년 12월 초삼일 삼경, 월하(月下)에 월담하는 자가 있었으니, 그는 행정부수반이 보낸 계엄군을 피해 본회의장으로 달려간 조선의 의전서열 2위인 민회의 수장이었다. 삼경이 끝날 무렵, 그는 다급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투표를 다하셨습니까?”라고 묻고, 재석 190 찬성 190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하며, 얼어붙은 국회 본회의장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사회봉을 내려쳤다. 그 후 10여일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찬성 204표로 가결되었고, 그 결과를 알리는 비장한 의장의 목소리와 동시에 국회 밖에 숨죽이고 있던 수많은 시민은 안도의 함성으로 응답했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공화국정치체제를 완성키위해, 피 흘린 수많은 사람과 세월이 있었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1688년 첫번째, 영국의 명예혁명으로, 이전까지 전제적 국왕이 행사하던 입법권, 세금 징수권한이 국왕에서 의회로 이동되며 입헌군주제가 시작되었다. 뒤이은 콩코르드 광장에 피를 뿌린, 프랑스 시민혁명(1789)은 주권혁명을 통해 공화국으로 한걸음 더 나아갔다.
“권력을 가진 자는 모두 그것을 함부로 쓰기 마련이다. 그 사람이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권력이 권력을 저지하도록 해야 한다.”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1748’을 통해 이룩한 ‘삼권분립’을 담보하는 필수의 방법론이다. 제왕적 행정부권력의 횡포를 막아나선, 삼권분립 정체가 작동하는 현상을, 우리는 모국 대한민국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19C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에머슨, 휘트먼 등의 뉴잉글랜드 지식인들과 교류했다. 초월주의자로 불리웠던 그들은, “개인은 독립적이고 자주적 판단으로 양심에 따라 행동함으로 개인적 타락을 예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가 콩코드 공회당에서 강의한 ‘정부와 관계된 개인의 권리와 의무’는 ‘시민 불복종’으로 알려졌으며, ‘정부의 행위가 비도덕적이라고 여겨지면, 그것을 거부할 시민의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편, 우리는 12.3 계엄군의 행동에서, 군인은 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지만, 자기 양심에 거스르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라는 소로우의 ‘시민 불복종’ 행동의 성숙한 시민의식의 일부를 발견할 수도 있음은 매우 다행한 일이었다.
인류의 역사속에서, 국가든 기업이든 조직이든 간에 외부의 강압에 의해 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스스로 파괴되어가는 과정에서 탐욕스런 외부의 힘이 마지막 숨통을 조이며 이미 승리한 상태로 들어온다. 패망이 갑자기 엄습한다지만, 아무도 몰래 숨어서 오는 것은 없다. 그것을 ‘침략’이라고 부른다. ‘외침’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도 그렇고, 병자호란도 그렇고, 심지어는 한일합방도 그렇다.
인류사의 가장 오래된 비극은 아테네에서 BC 472년에 첫 상연된 살라미스 해전을 다룬 ‘페르시아인들’이다. 연극에서 어머니 아토사는 슬픔에 울부짖는 아들 크세르크세스왕에게 페르시아 멸망의 이유를 한마디로 ‘자만심’이라고 이야기한다. ‘자만심’이란 자신을 깊이 성찰하지 않고 현재의 혜택과 풍요가 자신 스스로 성취했다고 착각하는 마음의 상태이다. 페르시아 왕은 자만심으로, 인류 최초의 세계제국 페르시아를 멸망의 길로 몰아간 비극을 초래했다.
한강 작가는 노벨상 수상을 위해 스웨덴 한림원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왜 이토록 아름다운가? 이 둘 사이의 질문 사이에, 긴장과 내적 갈등이 내 글 쓰기를 일구어낸 동력이었다.” 라고 밝혔다. 또한 ‘소년이 온다’ 는 작품을 쓰며,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할때, 그 사랑이 부서질 때 왜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라는 섬세한 내면적 질문을 던지며,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한국인의 차원높은 인식수준을 전세계에 알렸다.
그러나, 최근에 12.3 초유의 비상계엄사태를 목도하며, 피흘려 얻은 국가정체, 삼권분립의 위대함과, 불의한 명령에 과감히 맞서는 ‘시민 불복종’행동의 용기를 우리가 목격할 수 있었음은 다행한 일이다.
역사는 미래를 위한, 과거와 현재의 끝임없는 대화이다. 역사공부를 통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해지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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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응남 변호사·서울대 미주동창회 15대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