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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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단상] 한 세기를 건너온 아름다움

2024-12-27 (금) 12:43:49 김인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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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년 말이 되어서일까? 새벽에 잠이 깼다. 거실이 어두워서 베란다로 나갔다. 어둠이 사라지기 직전의 고요가 도시를 감싸고 있다.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리며 마야의 베일처럼 거리를 지우고 있다. 우중충하고 무겁게 내려앉은 찬 공기가 계속되는 요즈음은 딱히 감기 철이다.

우중충한 날씨가 저녁까지 계속됐다. 친구로부터 카톡이 왔다. 조용히 속삭이며 스며드는 음악 소리! 마음속을 깊게 흔들고 감동을 주는 바흐의 시칠리아노를 임윤찬이 치고 있었다. 두 번을 들었다. 어린 청년 임윤찬의 올곧은 의지가 느껴지는 그의 음악 세계, 다른 것은 절대로 끼어들 수 없는 그만의 순수한 예술세계를 음미하며 들었다.

지난 젊은 시절 한 시인의 삶과 그의 ‘시’에 꽂혀서 그에게 열중했던 시절이 생각났다. 인류 역사를 거슬러보면 자신의 전 인생을 송두리째 바치면서 의심없이 예술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19세기 상징주의 시의 대가인 프랑스의 스테판 말라르메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세련되고 명석한 말라르메는 당시 거장의 시인들, 예술인들과 파리의 롬 가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서 유명한 ‘화요회’란 모임을 이끌었다. 밤늦은 시간까지 ‘절대미’를 추구하면서 같이 숨을 쉬고 영혼의 대화를 나누며 전생을 보냈다. 당시 마네는 ‘화요회’ 모임에 고갱과 모네와 더불어 자주 참석했다고 한다. 마네가 그린 <스테판 말라르메의 초상>은 창백한 정신의 세계를 끈질기게 추구하는 둘만의 따스한 우정을 느끼게 해준다.


내가 말라르메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앙드레 지드의 글에 몰두하면서부터다. 지드의 글에서 ‘화요회’에 참석한다는 문장을 읽었었다. 당시 최고의 지성인인 그가 ‘화요회’의 무엇이 그를 끌었을 까고 의문이 들었다.

(창공) 영원한 창공의 초연한 빈정거림은 / 꽃들처럼 무심하게 아름다워서 / 고통의 메마른 사막을 헤매며 제 재능을 / 저주하는 무기력한 시인을 짖누르네.

그의 시 첫 연처럼 그는 짓누르는 시인의 길을 순수시를 위해 인생을 철두철미 디자인해서 살았다. 그의 끈질긴 인내의 삶과 난해한 시의 세계에 끌렸었다.

드디어 지난여름 할리우드 볼 공연장에서 임윤찬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베토벤의 황제를 연주하려는데 골몰한 그는 할리우드 볼 안의 수많은 관람객은 안중에도 없이 곧장 피아노를 향해 걸어 나왔다. 그리곤 연주가 다 끝난 다음에야 표정이 풀린 그의 미소 띤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열광된 팬들의 기립박수와 휘파람과 환호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임윤찬도 역사적 인물들처럼 인생의 모든 시간을 오로지 음악에, 예술에 다 쏟아부으며 한길만 걸어가며 그의 일생이 말라르메보다는 더 다양하고 즐겁고 행복하기를 기대해 본다.

<김인자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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