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과 내일] ‘방어기제’

2024-12-25 (수) 12:00:00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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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조상님 프로이트는 위대하게도 ‘무의식’을 발견했다. 그는 본래 정신과 의사로, 수많은 히스테리 환자들을 보면서 히스테리를 치료하는데 약물이나 콧속 절개 같은 당시의 외과적 방법이 아니라 환자의 내부에 웅크린 ‘무의식’과 ‘꿈’에 초점을 맞추었다. 수많은 정신장애의 원인이 생리적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문제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특히 ‘환자의 말’이 치료 수단이 된다고는 그때까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의식’을 ‘의식’과 만나게 한 그의 업적은 놀랄 만 하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 대부분은 무의식적이다. 이 무의식들이 일상에 엄청난영향력을 끼친다. 오히려 무의식적인 지각이 더 통상적이고, 의식적인 지각은 예외적일 수도 있다. 심리학의 설명은 이렇다. 세상에 불안감이 1도 없어 만사에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그만큼 고위험에 자주 노출되기 때문에 일찍 죽는다. 더러운 것을 보아도 역겨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쉽게 바이러스에 중독되거나 질병에 걸린다. 극단적 예는 얼마든지 더 있다. 남이야 알게 뭐람! 하면서 타인에게 마음을 열지도 않고 호감을 느끼지도 않는 사람은 마침내 사회에서 고립된다. 그뿐인가. 동정심을 모르는 사람은 타인에게 의구심과 당혹감을 불러 일으킨다.

크리스마스 파티 시즌, 두 눈에 빗자루 같은 속눈썹을 붙이고 명품 백과 나풀거리는 이브닝 드레스로 온몸을 휘감아도, 그 모든 치장을 훌훌 벗겨버린 인간의 원초적 감정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두 가지 뿐. 첫째,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무엇을 피할 것인가>, 둘 중 하나다. 자신에게 유리한 것 하나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감정이 흔들린다. 이때 감정의 추가 심하게 한쪽으로 쏠리면, 마음은 평형을 유지하려고 다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방어하는데 이것이 바로 ‘방어기제’다.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가 이론적으로 완성시켜 놓았는데 지금 정신질환 분류에서는 무려 50여 가지로 방어기제를 설명한다.


환자사례집에 등장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 자기 집 초인종을 맹렬하게 울려 댄 소년은 문이 열리자마자 엄마에게 왜 벨소리를 듣지 못하고 이리 늦게 나왔느냐고 소리 높여 비난한다. 초인종을 누르고 화를 내는 그 짧은 사이에 소년은 벨을 크게 울려 댄다고 비난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을 비난할 틈을 주지 않고 엄마에게 화를 낸 것이다. 일종의 예방 수단이다. 소년의 불안의 강도를 말한다. 자신을 공격할지도 모르는 바로 그 사람을 향해 먼저 공격한 것이다. 이것이 ‘공격자 동일시’라는 방어기제이다. 방어기제는 인간 무의식 안에 들어있다.

무의식 안에 들어있는 용납될 수 없는 생각, 충동들은 어떡하나? 교회에서 사사건건 반대하는 한 교인이 있다. 사사건건 제동을 거니 일이 안된다. 목사님은 그 사람을 미워하는 자신에게 소스라쳐 놀란다. 주일날 교회에서 목사님은 과장되게 웃는 표정으로 다가가 인사를 한다. “아이구! 반갑습니다! 형제님이 오시니 교회가 다 환해 집니다.” 중요한 방어기제, ‘반동형성’이다. 공격적 증오라는 욕구를 숨기기 위해 반대로 더욱 예의 바르고 관심을 표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요즘 한국 정치계의 실시간 브레이킹 뉴스에서도 수많은 방어기제들을 발견한다. 마이크 앞에 선 사람들이 불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펼쳐가는 각자의 ‘방어기제’를 탐색하느라 나 혼자 재미있게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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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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