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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다시 읽는 조지훈의 ‘지조론’

2024-12-19 (목) 조광렬/수필가·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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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지인께서, “지금 이시대에 적합한 글이라 생각된다”며 “최근 12.3 비상계엄 사태와 혼란스런 정국을 지켜보며 이글을 올린다” 는 설명과 함께, 조지훈 시인이 1960년, 4.19혁명이 나기 두달전 <새벽>지에 쓴 ‘지조론(志操論)을 나에게 보내주었다. 이 기회를 빌어 그 일부나마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지조란 것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지조가 교양인의 위의를 위하여 얼마나 값지고, 그것이 국민의 교화에 미치는 힘이 얼마나 크며, 따라서 지조를 지키기 위한 괴로움이 얼마나 가혹한가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한 나라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먼저 그 지조의 강도를 살피려 한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명리만을 위하여 그 동지와 지지자와 추종자를 일조(一朝)에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지조없는 지도자의 무절제와 배신앞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실망하였는가.


지조를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아는 까닭에, 우리는 지조있는 지도자를 존경하고 그 곤고를 이해할 뿐 아니라 안심하고 그를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자이기 때문에 지조 없는 지도자, 배신하는 변절자들을 개탄하고 연민하며, 그와 같은 변절 위기의 직전에 있는 인사들에게 경성(警醒)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다. 선비와 교양인과 지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장사꾼과 창녀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식견은 기술자와 장사꾼에게도 있을 수 있지 않는가 말이다.

물론 지사(志士)와 정치가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독립운동을 할 때의 혁명가와 정치인은 모두 다 지사였고 또 지사라야 했지만, 정당 운동의 단계에 들어간 오늘의 정치가들에게 선비의 삼엄한 지조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일인 줄은 안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 정당 운동을 통한 정치도 국리민복을 위한 정책을 통해서의 정상(政商)인 이상 백성을 버리고 백성이 지지하는 공동 전선을 무너뜨리고 개인의 구복(口腹)과 명리를 위한 부동(浮動)은 무지조로 규탄되어 마땅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정치인의 무절제를 장사꾼적인 이욕의 계교와 음부적(淫婦的) 환락의 탐혹(眈惑)이 합쳐서 놀아난 것이라면 과연 극언이 될 것인가. 하기는, 지조와 정조를 논한다는 것부터가 오늘에 와선 이미 시대착오의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더러운 변절의 정당화를 위한 엄청난 공언을 늘어놓은 것은 분반(噴飯)할 일이다. 백성들이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먼 줄 알아서는 안된다. 지조를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자기의 신념에 어긋날 때면 목숨을 걸어 항거하여 타협하지 않고, 부정과 불의한 권력 앞에는 최악의 곤욕을 무릅쓸 각오가 없으면 섣불리 지조를 입에 담아서는 안된다.

신채호 선생은 망명생활 중 추운 겨울에 세수를 하는데. 꼿꼿이 앉아서 두 손으로 물을 움켜다 얼굴을 씻기 때문에 찬물이 모두 소매 속으로 흘러들어 갔다고 한다. 어떤 제자가 그 까닭을 물으매, “내 동서남북 어느 곳에도 머리 숙일 곳이 없기 때문” 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무서운 지조를 지킨 분의 한 분인 한용운선생의 지조 때문에 낳은 많은 기벽의 일화도 마찬가지다. 그는 조선의 국토 전체를 커다란 감옥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따뜻한 온돌에서 지내는 일을 과분한 일이라고 여겼다.

오늘 우리가 지도자와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지조는 이토록 삼엄한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신 뒤에는 당신들을 주시하는 국민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자신의 위의와 정치적 생명을 위하여 좀 더 어려운 것을 참고 견디라는 충고 정도다.

우리는 일찍이 어떤 선비도 변절하여 권력에 영합해서 들어갔다가 더러운 물을 뒤집어쓰지 않고 깨끗이 물러 나온 예를 역사상에서 보지 못했다. 만근에 우리나라는 변절자가 많은 나라였다. 감당도 못할 일을, 제 자신도 다스리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민족이니 사회니 하고 나섰더라는 말인가. 깨끗한 선비들은 혼탁한 지조없는 군주룰 위해, 나가서 벼슬하지 않았다.”(하략)

65년전에 발표된 이글이 마치 오늘 쓴 글처럼 느껴지는 것은 무얼 뜻하는 것일까. 잠 못이루는 밤이다.

<조광렬/수필가·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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