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에세이] 트로트는 꿈을 싣고
2024-12-18 (수)
권조앤 오렌지 글사랑회 회장
사연이 담긴 노래를 들으니 가슴이 뜨겁다. 수요일 아침 9시가 되면 TV로 신동 트로트 가수 경연대회를 본다. 오늘은 다섯 명 중에 가슴에 4번 번호를 단 소녀에게 관심이 갔다. ‘미소 천사’라고 이름표에 적혀 있는 열 살배기다. 웃으면 눈이 초승달이 된다. 긴 머리를 곱게 양 갈래로 따서 어깨 앞으로 내리고 깜찍한 핑크색 원피스를 입었다. 귀엽다.
아빠는 그녀가 일곱 살에 하늘나라로 떠났단다. 아빠가 동안이라 함께 다닐 때면 가끔 오빠냐고 묻기도 해 기분이 좀 안 좋았다고 해서 웃음을 준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하면 아빠보다 점수가 더 나왔다며 행복했다는 추억을 얘기했다. 그녀의 그리움이 담긴 얘기를 들으며 흘리기 시작한 눈물이 노래가 끝나도 멈추어지지 않았다.
어려운 중에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희생과 사랑으로 노래 공부를 했기에 가수가 되어 효도 하고 싶다고 했다. 조부모와 다니면 늦둥이 자식이냐 묻는 사람도 간혹 있단다. 그러면 기분이 나쁜 게 아니고 나도 이 다음에 동안으로 살지 않을까 기대 한다며 또 한 차례 관객이나 시청자에게 웃음을 준다. 첫 음절부터 마음을 사로잡는다. ‘천년학’이라는 노래다. 어려운 노래를 기성가수 못지않게 잘 부르고 있으니 신동은 신동이다. 카메라에 비친 조부모는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나는 어린 딸을 두고 하늘로 떠나야만 했을 소녀의 아빠가 가여워 더 눈물이 났다. 그녀는 자신만만하게 자기가 노래를 잘한다며 사연을 마무리 지었다. 결과는 7만 표 가까이 받아 일등이다.
처음에는 아빠 잃은 어린이의 가여움에 눈물이 나다가 꿈을 향해 나아가는 열정에 감동되어 눈물을 흘렸다. 나는 민족 전쟁인 6·25와 1·4후퇴란 두 번의 피란을 네 살 적에 겪었다. 민족적으로 격동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 시가와 친가 모두 부모가 살아계셨기에 어릴 적 부모 잃은 쓰라린 슬픔을 짐작만으로 이해했다. 육십 넘어 부모님을 잃고 난 뒤에 큰 산이 무너진 허탈함에 한동안 허우적거렸었는데 어린 나이에 이겨낸 그녀가 대견했다.
신동 트로트 가수 지망생들의 사연은 각양각색이라 어린이들의 눈으로 보고 느낀 삶을 듣다보면 새로운 가르침으로 다가오기도 힌디. 확실한 꿈과 그것을 이루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신동들에게 커다란 박수를 보내며 시청하고 있다.
트로트는 젊어서 뽕짝이라고 멀리하고 외국 팝송이나 한국 가곡, 외국 명곡을 불러야 신세대인 것처럼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서 차츰 트로트가 좋아지는 것은 그 안에 한국인의 정서와 한이 들어가서가 아닐까. 노래가 나오면 저절로 어깨춤이 나오거나 엉덩이가 들썩이고 때론 노랫말이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 울컥하며 감동을 받기도 한다. 미국에 오래 살았지만 핏속에 흐르는 민족성은 어쩔 수 없나보다.
‘아침마당’은 일상을 살면서 행복을 찾아가는 방송으로 바람직한 장수 프로이다. 특히 수요 아침 방송은 가수의 꿈을 키워주고 있어 노래를 좋아하는 내가 늘 즐겨 본다. 함께 웃고 함께 울며, 꿈을 키워나가는 그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트로트 열풍이 유행처럼 사라지지 말고 계속 하나의 국민가요로 계승되기를 바란다. 어려움을 헤지고 잘 자란 ‘미소 천사’가 미소 지을 일만 생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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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조앤 오렌지 글사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