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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며] 계엄 이후

2024-12-13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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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한밤중에 계엄령이 전격적으로 내려졌다가 취소된 다음날아침, 분당에서 오목교역까지 갔다. 아침8시 야탑역에서 수인분당선을 타고 선정릉역에서 9호선 환승을 한 후 여의도역에서 다시 5호선으로 환승후 오목교역에서 내렸다. 한시간 반이 걸리는 긴 시간동안 지하철 안이나 걷는 사람 모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비상계엄선포 긴급담화, 계엄사령부 1호 포고령 발표, 무장계엄군 국회 경내 진입, 국회 계엄해제 요구 결의안 통과, 비상계엄선포 해제 발표까지 6시간동안 숨가쁘게 진행된 사태에 다들 말을 잊은 충격을 받은 것이다.

지하철 승객들은 눈 감고 앉았거나 고개를 숙여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전화벨조차 울리지 않았다. 이 삭막하고 짓눌린 분위기란, 45년 전 계엄령이 내려졌던 독재 시대로 들어선 듯했다.


3개월 전부터 매주 수요일 아침에 만나는 문화모임 회원들은 1976년 10.26 다음날 내려진 계엄령, 밤새 잠을 설쳤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 아침에 눈 떠보니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며 다들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다들 정치인의 안중에도 없는 소시민의 생업은 어찌 될 것인가? 사는 것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며 계엄후 후폭풍을 걱정했다.

4일부터 전국 각 지와 대학, 종교, 법률, 역사, 문화계 모든 분야의 시국 선언과 윤석열 탄핵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시위가 불일 듯 일어나고 있다.

7일 탄핵 투표를 앞둔 오전 11시경, 삼청동에서 버스를 타고 경복궁 앞을 지났는데 늘 거리 가득하던 한복 입은 외국인들이 추운 날씨탓인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또 조선일보사 앞에서부터 덕수궁을 지나서까지 하얀 플라스틱 의자가 줄과 열을 맞춰 준비되는 것을 보았다.

저녁에 볼 일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시청 앞을 지나는데 아침의 그 의자에 전국에서 올라온 보수단체 사람들이 지역별 팻말 아래 나란히 앉아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같은 시간, 여의도 국회대로 양방향 차가 모두 통제되고 국회 앞 정문을 기준으로 모든 방향의 거리에서 범국민 촛불대행진이 이뤄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헛발질 한방에 안그래도 위태위태하던 사회적 혼란이 극심해졌다.

서울 한복판에서 한국이 반으로 쫘악 갈라지는 소리를 들었다. 한국, 어쩌면 좋은가, 다시 후진국으로 내려앉는 거 아냐 싶었다.
7일 오후 9시20분 국회에 상정된 윤대통령 탄핵소추안은 정족수 미달로 자동폐기 되었고 민주당은 될 때까지 탄핵을 시도할 예정이라고 한다. 오늘도 계엄 사태로 인한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일주일동안 원달러 환율이 대거 올랐고 미국, 영국, 뉴질랜드, 캐나다, 필리핀 등 한국을 찾던 나라마다 여행경보 상향 조정을 했다. 외신들은 일제히 한국 경제의 불안과 내년도 1분기 관광객 대폭 감소를 보도했다.

그동안 명동의 야시장과 홍대 앞 거리를 커다란 여행가방을 끌고 쇼핑하고 길거리 음식을 사먹던 관광객을 더이상 보기 힘들지도 모른다. 안보 우려국가로 추락한 한국의 한류에 대한 흥미도 반감될 것이다.

국회로 뛰쳐나가 총부리를 두려워하지 않던 시민, 시민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계엄군, 모두 우리의 국민인데, 마음을 달래려고 박노해의 시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것’을 떠올려본다.

‘나라의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 나오기에/ 주인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면/ 주인들이 너도나도 한 요구씩 하면/ 원래 민주국가는 시끄러운 것/ 때법 공화국 시위 공화국 파업 공화국/ 그래야 살아있는 민주질서지/...국민이 무력감을 느끼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앞으로 장기간 어수선하고 불안할 것이다. 기껏 세계 10대 경제강국에 올라서고 K팝 드라마·영화에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보여준 한국의 저력을 흔들리는 민주주의 모습으로 보여주어야 하는가. 또 우리는 내년초 취임하는 미국대통령 ‘트럼프 대비’는 안하는가?

종로 정독 도서관 입구 오른쪽 잔디밭에 ‘김옥균 집터’라고 쓰인 표지석이 있다. ‘조선말 개화파의 지도자인 김옥균이 거처하며 갑신정변을 논의하던 집터(종로구 화동 260번지)’라고 쓰인 그 앞을 지나면서 ‘김옥균의 3일천하’를 떠올렸었다. ‘윤석열의 계엄 여섯시간’은 어떻게 기록될까?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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