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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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흔든 의문의 사진, 제자들이 다 용의자로 보였다

2024-12-03 (화)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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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진 교실 : 딥페이크 그후 ‘아이들을 몰랐다’

▶ 2년 넘게 격 없이 지내던 제자 중에 범인
▶ 자백 없고 수사도 중지, 가해자는 모른 채
▶ 혐오 정서 만연한 교실이라 훈육 어려워

11년 차 중학교 교사 박한영(38)은 지난 1월 교무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이틀 뒤면 졸업식이다. 3년 전 처음 만났던 아이들. 그때는 초등학생 티를 벗지 못했는데 어느새 훌쩍 커 제법 어른스러워졌다. 한영은 담임이자 영어 교사로 아이들의 중학교 생활을 오롯이 함께 보냈다. 그만큼 정들었지만 사진을 같이 찍는 건 다른 문제였다. 그는 졸업 앨범 사진도 찍지 않았다.

한영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두세 번 훔치고는 크게 심호흡했다. 정든 아이들이 선생님과 추억을 남기고 싶다는데 거절하긴 어려운 노릇이었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졸업식 당일, 제자들은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한영은 산란한 마음을 애써 외면하고 카메라 렌즈를 향해 웃었다. 어떤 학생은 수줍게 편지만 전하고 돌아섰다. 아이들은 전날 한영이 어렵게 꺼낸 말을 잘 기억했다.

“내일 사진 찍으러 와도 괜찮아. 그런데 선생님이 상처가 좀 있잖아. 절대 어디 올리지는 말고 카카오톡으로 나한테도 꼭 보내줘.”


고마움과 미안함, 슬픔과 불안이 시차 없이 몰려왔다. 교실 한편에서 쭈뼛거리는 학생과 친구들이 보였다. ‘나랑 사진을 남기고 싶은데 얘기하지 못하는구나’ 싶어 한영이 먼저 다가갔다. 아이의 아버지는 스마트폰을 들고 촬영 준비를 하는 듯했다.

“얘들아, 이리 와. 같이 찍자.”

“이거 동영상이에요.”

아버지는 이미 한영의 모든 움직임을 빠짐없이 영상에 담고 있었다. 카메라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한영 혼자 조심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이었다. 맥이 탁 풀렸다. 언제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1년간 그를 괴롭혔던 감정이 다시 커졌다.

색색의 봄꽃이 무채색 교정을 물들이던 지난해 4월, 서준식(15)은 교무실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간신히 호흡을 가다듬고 나서 문 손잡이를 돌렸다.

“저… 선생님, 이걸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좀 아닌 것 같아서요.”

준식은 담임교사인 장수현에게 스마트폰 화면을 내밀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디시) 게시물이 떠 있었다. 3개월쯤 전에 올라온 글이었다. 준식이 말을 이어갔다.


“얼마 전에 한영 쌤이 디시에서 쓰는 나쁜 말들에 대해 설명해 주셨거든요. 궁금해서 디시에 들어가 쌤 이름을 검색했는데 이게 나왔어요.”

준식이 돌아가고 얼마 안돼 한영이 교무실로 들어왔다. 그는 난처해하는 수현의 표정을 읽고는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주저하던 수현은 화면을 보여줬다. 제목 아래에는 괴상한 이미지가 붙어 있었다. 표범처럼 생긴 동물 두 마리가 교미하는 사진이었는데 수컷과 암컷의 머리에 각각 한영과 전혀 모르는 남성의 얼굴을 합성했다. 제목을 다시 올려다봤다. ‘지 아들이랑 하는 박한영.’ 수업 시간에 가끔 아들 이야기를 했던 게 떠올랐다. 오싹하면서도 온몸에 열이 올랐다.

한영은 머릿속을 가득 채운 수만 가지 질문을 모두 지우고 하나만 남겼다. 범인은 대체 누구인가. 3학년임은 분명했다. 합성된 자신의 얼굴 사진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때 비대면 수업을 위해 만든 채팅방에서 썼던 프로필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자백을 바랐다. 반마다 들어가 털어놔달라고 말했다.

“선생님한테 조용히 연락하면 문제 삼지 않을게. 일주일 안에 이야기해줘.”

한영의 기대와는 달리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 착잡한 마음으로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홈페이지에 접속해 신고서를 썼다.

“내가 먼저 볼까?”

거실에 앉아 있던 한영의 남편 손에 등기우편이 들려 있었다. 봉투 겉면에 적힌 ‘경기 □□경찰서’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신고 후 40일 만에 온 수사 결과 통보서였다. 한영은 상황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야. 내가 뜯어 볼게.”

통보서를 한 자 한 자 읽던 한영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이내 우편물을 마구 구기며 울부짖었다. 통보서에는 단 두 줄만 적혀 있었다. ‘영장을 집행해 IP(인터넷 접속 주소) 정보를 얻었음. 해당 IP를 할당받은 가입자 정보는 통신사가 3개월만 보관해 추가 확인할 수 없음.’ 범인을 잡을 증거를 찾지 못해 수사를 중지한다는 고지였다. 경찰은 신고자이자 피해자인 한영을 단 한번도 불러 조사하지 않았다. 애가 탔지만 경찰을 믿고 기다렸는데… 수사 의지를 느낄 수 없는 통보서를 읽다 보니 열이 올랐다. 격앙된 한영이 할 수 있는 건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것뿐이었다.

“어떻게 두 줄로 끝낼 수가 있어! 나한테 아무것도 묻지 않았잖아.”

한영만의 경험은 아니었다. 인천의 중학교 교사 전소연(37)도 같은 이유로 분노했다. 2년 전 학급 운영을 위해 만든 ‘네이버 밴드’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학생으로 추정되는 상대가 일대일 메시지를 통해 ‘아헤가오’(성적 흥분으로 눈동자가 위로 올라간 채 안면에 홍조를 띤 여자 얼굴) 사진을 보내왔다. 그리고는 소연을 농락하듯 덧붙였다.

“죄송합니다, 쌤. 잘못 보냈어요. 왕성할 시기긴 하잖아요. 이해해주세요.”

다른 여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소연도 학생에게 성희롱당한 적이 이미 있었다. 몇 해 전에는 한 남학생이 교무실에 찾아와 “성적 충동을 느껴 화장실에서 선생님을 생각하며 자위했다”고 말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에는 아이에게 “그건 범죄”라고 꾸짖는 선에서 마무리했지만 이번엔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소연은 피해 사실을 바로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라인을 운영하는 네이버에서 범인의 개인정보를 알 수 없다고 답했다’며 수사를 중지했다.

“좌절했죠. 신고해도 소용없다는 걸 느꼈어요. 왜 사람들이 자경단처럼 사적으로 단죄하는 걸 통쾌해하는지 알겠더라고요.”

눈을 떴는데도 악몽을 꾸는 날들이 이어졌다. 한영은 자다가 일어나 우는 날이 늘었고, 화가 치밀어 애꿎은 베개를 주먹으로 내려치기도 했다. 열 살도 안 된 아들까지 모욕당한 터라 충격이 더 컸다.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용의자로 보였다. 수업을 하다 문득 ‘저 아이가 범인인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어느 날은 “선생님, 오늘 너무 예쁘다”라고 웃으며 말하는 학생에게 정색했다. 그 게시물을 올려 미안한 마음에 호의적인 말을 던지는 게 아닌가 싶었다. 특유의 밝은 목소리로 아이들과 격 없이 어울리던 ‘한영쌤’은 점점 지워져갔다. 아슬아슬한 하루하루가 반복됐다.

“2년 넘게 살갑게 지냈던 아이들의 얼굴이 ‘용의자1’ ‘용의자2’ ‘용의자3’으로 보였어요. 이런 마음으로 한 학기를 버틸 수 있을까 싶었죠.”

한영을 안쓰럽게 보던 주변 교사가 “교육청 교원치유지원센터에서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2년 전에도 학부모 민원 탓에 마음을 다쳤다. 상담 전 심리검사에서는 스트레스 정도가 위험 수준으로 나와 휴직 권고를 받았다. 하지만 한영은 상담을 받지 않았고, 쉬지도 않았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그날의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 건 무척 괴로운 일이다. 털어놓는다고 범인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한편으로는 ‘내가 쉬면 내 업무를 누가 하나’라는 책임감도 한영을 옭아맸다. 학생에게 범죄 피해를 당하고도 교단에 계속 서야 하는 건 여러 교사가 겪는 일이다. 유상범 전국교사노조 정책국장이 학교 상황을 설명했다.

“학생들이 제보해주지 않으면 피해 사실 자체조차 알기 어려워요. 범행한 학생을 알게 돼도 분리 조치를 5일까지만 할 수 있어요. 병가를 쓸 수 있지만 신청하는 선생님도 결정하는 학교도 부담스러워요. 누군가 업무를 대신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니까요.”

피해자이기에 앞서 교육자라는 지위를 잊지 말라고 다그치는 분위기도 교사를 숨 막히게 한다. 오랜 시간 헌신을 강요당해 온 교사들은 피해를 겪고도 자신을 돌보길 꺼리고 신고조차 주저한다. 지난 8월 이후 텔레그램에서 불법 딥페이크물을 공유해온 수백 개의 ‘학교방’이 확인됐지만 피해를 신고한 교사는 전국에 36명(교육부 11월 8일 기준)밖에 안 됐다. 초등교사 출신인 서현주 성교육 활동가는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교사니까 학생을 품고 가르쳐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가 있어요. 특히 여교사에게는 엄마나 누나 같은 역할을 해주길 원해요. 이 탓에 피해를 입고도 교사 스스로가 ‘이 정도는 넘어 가야지’라고 생각하죠.”

한영과 소연이 바라보는 학교 안 풍경은 10여 년 전 초임 교사 시절과 크게 달라졌다. 언젠가부터 교실에선 혐오 정서가 짙어졌다. 아이들의 잘못이라고 몰아붙이기는 어렵다. 성인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비출 뿐이기 때문이다. 소연이 염려스럽게 말했다.

“학생들이 또래 친구의 엄마 이름을 함부로 부르며 ‘니 에미’라고 하는 걸 들었어요. 대부분 온라인에서 배운 여성 비하 표현이죠.”

그래도 아이들은 절망보다는 희망을 준다. 한영을 악몽 속에서 건진 것도 제자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급식실에서 만난 한 아이는 한영의 귓가에 대고 “저는 선생님 편”이라고 속삭였고, 복도를 지나다 마주친 여러 명의 학생들은 “자수해도 절대 용서하지 마시라”며 힘을 실어줬다. 사실 한영이 범인을 잡고 싶었던 것도 그 아이를 어떻게든 가르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소연은 오늘도 마음을 다잡고 씩씩한 척 교실에 들어선다.

“저는 성선설을 믿고 싶거든요. 악하다고 생각하면 학생들을 못 가르칠 것 같아요. 저에게 그 메시지를 보낸 아이에게 잘못을 가르쳐주지 못했다는 게 가장 마음에 걸려요.“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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