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의 메사추세츠 주 플리머스 항구에 도착하였다. 도착한 첫 해의 겨울을 나는 동안 추위와 병으로 절반이 죽었지만, 1621년 가을에 첫 번째 추수감사를 드렸다. 인디언들이 준 씨로 수확한 옥수수와 야생 칠면조로 3일간에 걸쳐 축제를 하였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링컨 대통령은 1864년 11월 넷째 목요일을 감사절로 선포했다.
미국의 개척은 감사로부터 시작되었다. 노르웨이 속담에 “감사하는 마음에는 사탄이 씨앗을 뿌릴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기쁨의 열매가 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불평하는 마음이 있으면, 기쁨이 없다. 기쁨의 비결은 감사하는 데에 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지는 귀한 축복이 있다.
첫째, 감사는 환난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해 준다. 시편 50편 14-15절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영국에서 미국 동부해안까지 5천마일 정도 된다. 그 거리를 청교도들이 117일 동안 항해했다고 하니, 2천5백 시간 이상을 바다에 있었다. 하루 평균 시속 2마일 정도로 걷는 것보다 느렸다. 배에 탄 사람들의 고통이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험한 항해 속에서 두 번이나 배가 폭풍우를 만나 파선의 위험에 처하고 사람이 물에 빠졌지만, 다 구할 수 있었다는 데에 감사했다. 항해 중에 두 사람이 죽었지만, 새로운 한 생명이 태어났다는 데에 감사했다. 그들의 감사는 죽음의 항해를 자유의 항해로 바꾸어 놓았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졌을 때 감사기도를 드렸더니 천사들이 나타나 보호해 주었다(단 6장).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감사의 찬송을 불렀더니 묶였던 쇠사슬이 풀어지고 옥문이 열리는 역사가 일어났다(행 16장). 환난과 시련 중에도 감사하고 찬양하면, 사자굴이 천사굴이 되고 사방이 꽉 막힌 듯한 감옥 같은 문이 열리고, 무덤 같은 절망감 속에서도 풀려나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있다.
둘째, 감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 고린도후서 4장 15절에,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스펄젼 목사는 “촛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햇빛도 필요 없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빛을 주신다”고 했다. 예수는 어린아이가 드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갖고 감사기도를 드렸다. 어린 아이의 한끼 식사를 놓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그 자리가 바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는 기적의 출발점이었다. 5천명을 먹을 수 있는 많은 떡이 생겼을 때 감사한 것이 아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놓고 감사하는 그 마음에 축복의 씨가 들어 있는 것이다. 영어로 thank(감사)와 think(생각)은 같은 어간을 가지고 있다. 한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얼마든지 감사할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셋째, 감사는 치유의 능력이 있다. 감사는 건강의 활력소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쁨이 충만할 때에 우리 몸에 유익한 엔돌핀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원망하고 불평하면 건강하던 몸도 병이 든다. 말라기 4장 2절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사람의 얼굴은 해와 같이 밝은 기쁨이 있다. 수천 곡의 찬송가를 지은 화니 크로스비 여사는 의사의 실수로 일생 동안 소경으로 살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그 은혜가 너무 크고 감사하다”고 했다. 뇌성마비 시인인 송명희씨의 “없는 것을 바라보지 말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자“는 아름다운 시처럼 감사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