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시현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장이 알코올성 간질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은평성모병원 제공]
“알코올성 간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100명에게 물어보면 100명 다 본인 의지로 음주를 끊을 수 있다고 답해요. 그런데 간이 망가져 병원에 올 정도면 그런 상태가 아니거든요. 아들의 간을 이식받고도 술을 끊지 못해 간 이식을 한 번 더 받은 환자가 있을 정도예요. 망가진 간을 치료해도 음주 중독을 끊지 못하면 근본적인 치료가 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배시현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장(소화기내과 교수)은 “처음엔 힘들어서, 기분 달래려고 술을 자주 마시기 시작했겠지만 음주 중독에 빠지면 그때부턴 술 마시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게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달 6일 서울 은평구 소재 은평성모병원에서 만난 그는 “알코올성 간질환이 심해지면 음주에 있어 본인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가족도 등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며 말을 이었다. 알코올성 간질환은 과다한 음주로 발생하는 간질환을 말한다. 증상이 없는 지방간부터 알코올성 간염과 간경변, 간부전 등 다양한 질환이 여기에 포함된다.
“50대 후반 알코올성 간질환 환자가 있는데 현재 80세가 넘은 노모가 돌보고 있어요. 얼마 전 간성뇌증이 와서 입원 치료를 받더니 이번엔 다리가 코끼리처럼 부어서 병원에 왔더라고요. 배에 복수가 차서 병원을 찾은 적도 여러 번입니다. 아프다고 살려달라고 하소연하고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도 그때뿐이에요. 증세가 나아져 퇴원하면 또 술에 손을 댑니다.” 간성뇌증은 간의 기능 저하로 독소가 혈액 속에 누적돼 나타나는 뇌 기능 저하 현상이다.
배 원장은 “알코올성 간질환은 그래서 내과적 치료와 정신과적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그가 참여한 공동연구팀이 최근 대한간학회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연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종전에는 간 건강을 회복시키고, 관련한 합병증을 관리하는 데 주로 중점을 뒀다.
연구진은 영국 바이오뱅크 데이터를 활용, 알코올성 간질환 환자 2,417명을 대상으로 간질환 진단 후 정신과적 치료를 받은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의 20년간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정신과적 치료를 병행한 집단의 전체 사망률과 간질환 관련 사망률, 간경화 발생률은 정신과적 치료를 받지 않은 집단보다 낮게 나왔다. 집단별 중위생존기간(알코올성 간질환 진단 이후 절반이 생존한 시점까지의 기간)도 정신과적 치료를 함께 받은 집단에선 15.0년이었으나, 그렇지 않은 집단에선 10.1년으로 5년 가까이 짧았다. 배 원장은 “알코올성 간질환 진단 초기부터 정신건강의학과적 개입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실은 연구 결과와 여전히 동떨어져 있다. 그는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하다고 설득해 실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환자 비중은 알코올성 간질환 환자 10명 중 2명 안팎에 그친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꼼수’를 쓰는 일도 다반사다. “본인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길 거부하는 거니까 에둘러 환자에게 말을 합니다. 수면장애를 겪고 있으니 수면 클리닉에 가보라고 권유하고, 수면 클리닉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보는 협진서엔 음주중독이라고 쓰죠. 망가진 간만 치료해선 나아지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중독 정도가 심한 경우 정신과적 치료 방법으론 약물을 쓴다. 기쁨을 느끼는 호르몬(도파민)의 급격한 상승을 막거나, 금단증상을 완화하는 약물을 처방한다. 술에 대한 갈망을 줄이는 항갈망제도 사용한다. 경증인 경우엔 동기강화치료 등이 이뤄진다. 동기강화치료는 음주로 인한 문제를 극복하려는 의지(동기)를 높이는 면담 치료방법이다. 음주로 겪은 사회생활과 대인관계의 문제점을 떠올리게 한 후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스스로의 모습과 어긋나는 면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 방식이다. 인지행동치료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행동을 찾아보고, 이를 반복해 음주 의존도를 줄이는 방법이다.
배 원장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술 좀 그만 마시라’는 말을 들었다면 알코올 중독은 아닌지, 몸 건강엔 이상이 없는지 반드시 돌아봐야 한다”며 “음주에 관대한 한국 문화에서 그런 소리를 들었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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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