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이…” 라고 내 이름을 가만히 불러보면 아직도 슬며시 밀려오는 낯선 느낌, 그것은 마치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봤을 때 저게 나인가? 하면서 의아하게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하고 비슷하다고 할까? 어느새 내 나이 예순둘인데 여전히 내 이름을 애정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은혜 혜, 공경 경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 때문인지 직업으로 가장 오래 한 일도 남을 공경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연세 드신 분들을 섬기고 공손히 도와드리는 일을 업으로 삼고 밥벌이를 하면서 보람과 자부심도 있지만 매일이 꽃놀이일 수는 없듯이 때로 힘에 부치도록 고생스러울 때는 이름 탓을 했다.
내 이름이 촌스러워서 허리 펴는 날 없이 굽신굽신 동동거리며 남의 뒤치닥거리나 하고 사는 거라고 푸념을 했다. 말도 안되는 그런 연유로 더욱 더 나는 내 이름 혜경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한국 뉴스에서 혜경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들을 가끔 본다. 물론 성씨는 제각각에 이름의 뜻풀이 역시 다를 수 있지만 그녀들의 두 음절 이름이 불려지는 것을 볼 때 감회에 젖는다. 어쩐지 그들이 나와 비슷한 연배일 것만 같다. 왜냐하면 이름으로 세대를 구분할 수 있으니까.
나 때에는(라떼에는) 순우리말 이름을 쓰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름에 한자를 주로 썼기 때문에 의미를 존중하느라 남에게 불려질 이름의 소리나 느낌은 제껴두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어감이 센 이름들도 뜻이 좋으면 선택되었다. 자유롭고 부드럽고 예쁜 소리의 이름보다는 항렬에 따라 돌림자가 이미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
혜경이라는 이름은 어쩐지 너무 어른스러운 느낌이 들어서 갓난아기였을 때보다는 지금 이 나이 되어서야 어울림 직하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물론 어떤 이름도 나의 아기가 바르고 건강하고 행복하고 좋은 일을 많이 경험하면서 살기를 바라는 가족과 부모의 선하고 고운 소망과 염원이 담겨 있는 소중한 그릇과 같을 것이다. 그런 간절한 기도가 담긴 그릇이 이름이다.
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 사춘기와 반항기를 끔찍하게 겪어냈는데 내 자신이 너무 가치 없고 의미 없는 사람으로 생각된 나머지 부모님이 나에게 지어주신 고유한 이름마저 거부하고 친구들에게 “오늘부터 나를 정윤지라고 불러줘.”라고 했던 것이다. 마치 그 이름으로 불리면 보다 세련되고 멋있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을 거라는 아주 깜찍하고 재기발랄한 여고생의 치기같은 것이었을까.
물론 정식으로 호적에 개명을 하지는 못했지만 친구들은 재밌어 하면서 윤지라고 불러주었다.
어쨌든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름을 지어주신 부모님께 누가 되지 않을 만큼 잘 살아왔는지 자신은 없으나 지금부터라도 남은 한평생 이름값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이름이 같은 사람을 많이 만나지 못했는데 심심찮게 한국 뉴스에 등장하는 ‘혜경이들’을 보며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인가. 비슷한 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이름을 가진 그녀들도 어느 곳에서든지 자신의 이름을 사랑하고 이름값 하며 소신껏 살아가면 좋겠다.
혜경이의 전성시대를 구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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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경/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