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석훈 논설위원의 청론직설 - 남대일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기업가정신학회 부회장)
▶ 새로움에 도전하기보다 대기업 취업 등 안정된 삶 선택
▶실패를 두려워 않는 문화 만들려면 교육이 확 바뀌어야
▶대학성과지표, 창업수 아닌 문제 해결 뒷받침에 맞춰야
▶규제 철폐, 세제 지원 통한 튼튼한 창업 생태계 구축을
한국의 기업가정신이 위축돼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지난달 말 경남 진주에서‘K-기업가정신 국제포럼’이 열렸다.‘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기업가정신’을 주제로 열린 이 행사에는 국내외에서 기업인·대학생 등 450여 명이 참석해 한국 기업가정신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기업가정신학회 부회장인 남대일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1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명문대 진학과 대기업 취업만을 추구하는‘황금티켓증후군(Golden ticket syndrome·명문대 및 대기업 쏠림 현상)’이 우리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다”며“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독려하는 문화를 만들고 교육을 개혁해야 기업가정신이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남 교수는 튼튼한 창업 생태계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재도전 경영인에 대한 맞춤형 지원 시스템을 만들고 기존 업체를 인수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려는 기업가들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업가정신이란 무엇인가.
▲기업가정신을 얘기하려면 기업가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업가는 크게 두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첫 번째, 기업인은 기업을 만드는 사람이다. 기업가의 한자어로 ‘企業家’와 ‘起業家’ 등이 있는데 여기서 후자의 기(起)는 일으킨다는 뜻이다. 이런 측면에서 기업가는 도전 정신과 개척 정신을 가지고 기업을 설립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어떤 행동과 가치관을 갖고 있느냐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많은 기업가들은 왜 창업하는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등에 관심을 가진다. 여기에 확신이 서면 혁신 등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사회 전반에 확산하기 위해 노력한다. 종합하면 기업가정신은 도전·개척 정신으로 회사를 일으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하려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기업가정신은 왜 중요한가.
▲기업가정신이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과 기업 혁신을 촉진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일자리 부족 등 경제·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하나 더 추가한다면 개인의 성장과 자아실현 측면에서도 기업가정신은 매우 중요하다. 기업가와 평범한 사람을 나누는 주요 기준 가운데 하나는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이다. 문제를 보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과 어떤 방식이든지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의 차이다. 기업가는 문제 해결을 통해 엄청난 자아 성장과 만족감이 수반되는 경험을 갖게 된다.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연속해서 계속 창업하는 ‘연쇄 창업가’가 생겨나는 이유다.
-우리나라의 기업가정신이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창업 1세대들이 가졌던 역동적인 기업가정신을 찾아보기 힘들다’ ‘기업이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등의 우려들인 것 같다. 이런 걱정이 제기되는 원인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기업의 본질에 충실한 양질의 신생 기업이 늘어나고 있느냐이다. 경기 부진의 여파로 생계 유지 차원에서 떠밀려 창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기업가정신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정부 지원에 의존해 연명하려는, 사업성 없는 기업들이 여전히 많다. 옥석 가리기를 통해 양질의 신생 기업을 키워야 기업가정신도 고양시킬 수 있다.
-미국 등 외국의 기업가정신은 어떤가.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위험 감수(risk taking) 경향이 높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섣불리 뛰어들었다가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다른 하나는 기회를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미국의 경우 기회를 잡지 못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사회 전반에 존재한다. 반면 우리는 첫 번째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팽배한 탓에 창업 전반이 위축돼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혁신 기업에 관한 연구를 보면 혁신의 주체는 혁신 창업가가 될 가능성이 높은 우수한 인재들이다. 이들은 똑똑하지만 남들과 똑같이 행동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한국과 미국에서 인지능력과 이단아 기질이 동시에 높은 똑똑한 이단아들을 추적해본 연구가 있다. 미국의 경우 학업 능력이 우수한, 똑똑한 이단아들은 실리콘밸리 등에 가서 창업을 한다. 반면 한국은 똑똑한 이단아가 창업하는 경우를 찾기가 쉽지 않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보다는 대기업 직원, 의사 등 안정된 삶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업가정신은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관이 반영된 문화적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문화가 바뀌어야 기업가정신도 더 확산된다. 문화가 변하려면 결국 사람이 바뀌어야 하고 그 답은 교육에 있다. ‘황금티켓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소수의 사람만 성취할 수 있는 사회적 성공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2022년 9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한국 경제 보고서’에서 명문 대학 입학과 대기업 취업이라는 ‘황금티켓’을 손에 넣기 위해 한국인들이 벌이는 치열한 경쟁을 빗대 사용한 용어다. 모두가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하고 모두가 대기업에 들어가야 한다면 그렇지 못한 대부분은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인생의 목적을 이루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개혁이 절실한 것 같다.
▲미국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창업 교육을 받은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두 그룹으로 나눠 오랜 기간 추적 연구를 했다. 학창 시절에 창업 교육을 받은 졸업생들이 창업을 하는지 관찰한 것이다. 연구 결과는 대학에서의 창업 교육과 실제 창업의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는 것이었다. ‘빨리 창업해서 실패를 겪어보는 것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식의 창업 독려는 되레 역효과를 가져올 확률이 높았다. 주입식 창업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섣불리 창업에 나서지 않았다.
-우리나라 대학의 창업 교육은 어떤가.
▲대다수 대학에서 창업 기업의 수를 핵심성과지표(KPI)로 설정하고 있다. 학생들의 창업 사례가 많을수록 정부 평가에서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기준이다. 학생의 미래를 진심으로 생각해 창업하라는 것이 아니라 성과를 높이기 위해 창업을 권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실패해도 괜찮으니 무조건 시작해보라는 식의 교육은 무책임할 수 있다. 창업의 어려움을 일깨워주고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창의적 교육을 통해 주어진 제약 조건에 굴복하지 않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실행력을 키워줘야 한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할 텐데.
▲한국에서는 사전 허가를 받지 못하면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해 사업 추진을 주저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런 제약이 없으므로 스스로 창업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이 많이 배출되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있는 신생 기업이 잘 나타나지 않는 주된 이유다. 우리 젊은이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튼튼한 스타트업 생태계가 뒷받침돼야 기업가정신도 확산될 수 있다. 스타트업은 도전과 개척 정신으로 업(業)을 새로 일구는 것이다. 스타트업 활성화는 경제 전반에 활기를 불어넣고 기업 혁신을 촉진하게 되므로 신산업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
-어떤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한가.
▲첫 창업에 실패한 기업가들이 재도전할 경우 지원하는 맞춤형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또 처음부터 기업을 일으키는 창업이 아니라 기존 기업을 인수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려는 기업가들에 대한 정책적 지원도 검토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이미 ‘인수를 통한 창업(ETA·Entrepreneurship through acquisition)’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변화하는 산업구조를 따라가지 못해 어려움에 처한 제조 업체, 가업 승계가 불가능한 1세대 창업 기업 등이 많다. ‘인수를 통한 창업’에 나서는 경영인들이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일정 기간 법인세 감면 등 지원책을 고민해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창업 경험을 ‘커리어 패스(Career Path)’로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자기가 원하는 행동을 실제로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다. 창업에서도 ‘자기 효능감’이 대단히 중요하다. ‘창업이 별거냐, 저런 사람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기업 모두 나서서 실제 성공 사례를 발굴해 길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He is…1973년 대구에서 태어나 고려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워싱턴주립대에서 경영전략과 기업가정신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경영대학원에서 조교수로 근무했다. 2011년부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중소기업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기업가정신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임석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