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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며] 런던 베이글 뮤지엄

2024-10-11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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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조합이 이상하지 않은가? 베이글의 본고장은 뉴욕인데, 런던 베이글이라니? 또 갑자기 뮤지엄은 거기서 왜 튀어나올까? 뉴요커로 산 수십 년, 이 맛의 정체를 알아야 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핫플레이스이자 베이글의 성지라는 런던 베이글 뮤지엄(LONDON BAGEL MUSEUM)은 베이글, 샌드위치, 수프를 파는 유명베이커리다. 2021년 9월 문을 연 안국점은 아침 8시 오픈 한 시간 전부터 줄을 선다니 그렇게 해보기로 했다. 아침 7시반에 안국점 앞에 다다르니 이미 뜨거운 아침 햇살을 머리에 이고 40명 이상이 줄을 서있다.

요즘 MZ세대에게 유행인 오픈 런(Open Run: 매장문을 열자마자 달려가 구매)은 명품에 이어 빵 맛집이라고 한다. 한시간 이상 줄을 서있는 동안에도 중국인, 일본인 기타 아시안 관광객들이 커다란 여행가방을 들고 찾아오고 아이를 동반한 젊은여성이 주소를 들고 택시에서 내린다. 이들은 가게 앞에서 쉴새없이 인증샷을 찍는다.


겨우 내 차례가 되니 휴대폰 번화를 매장 사이트에 입력하라고 한다, 잠시 후 카카오톡으로 대기번호가 왔는데 44번이다. 종업원이 순서대로 번호를 부르고 그때서야 가게 안에 들어갈 수 있다.

매장 곳곳이 영국풍 디자인으로 된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가득하다. 벽장, 거울, 바구니, 깃발, 액자, 백열전구, 울퉁불퉁한 나무 테이블이 빈티지 감성이다. 이미 입장한 젊은이들로 안이 복잡한데 조금 후 “안녕하세요!” 하는 하이톤 인사가 활기차다. 종업원들이 수십 초마다 인사를 하면서 떠들썩하고도 활기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커다란 목판에 먹음직스런 베이글이 종류별로 가득 담겨있고 오른쪽 냉장칸에는 크림치즈가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다. 감자치즈 베이글, 블랙올리브 베이글, 시나몬피칸 베이글, 블루베리 베이글, 포테이토 치즈 베이글, 바질페스토 베이글, 솔트버터 베이글 등의 가격은 한 개 4,000원 정도, 일반 베이글보다 2배 가격이다. 메이플 피칸 크림치즈, 갈릭쪽파어니언 크림치즈, 연어 캐이퍼 크림치즈, 로즈메리홈메이드잼 크림치즈 등도 맛있어 보인다.

베이글을 종류별로 고른 후 “크림치즈 1번부터 7번까지 다 주세요.” 하고 푼돈으로 호기를 부려본다. 받아든 영수증은 물론 메뉴판, 오늘의 탑 메뉴 모두가 영어로만 되어있다. 정말 런던에 왔나?

양손 가득 베이글 봉지를 들고 집에 와서 먹어본 결과 맛이 뉴욕 베이글과는 확실히 달랐다. 약간 쫀득하고 찰진 것이 숙성비법이 남다른 것인지(14시간동안 저온 숙성), 뉴욕 베이글보다 부드러워 살짝 찰떡을 먹는 기분?

원래 베이글은 동유럽에 기반한 유대인들 주식이다. 19세기 유대인들이 뉴욕에 대거 이민와 살면서 널리 퍼졌다. 이스트를 넣은 밀가루 반죽을 링 모양으로 만들어서 발효시킨 후 끓는 물에 익힌 후 오븐에 한 번 더 구워낸 베이글은 쫄깃하고 질기면서 담백하다. 미국인들은 아침 식사이자 간식으로 즐겨먹는다.

런던 베이글 뮤지엄은 정작 영국의 수도 런던과는 상관없는데 런던을 베이글의 고장으로 만들어버렸다. 한국 K브랜드인 런던베이글뮤지엄 창업자는 이효정으로 1973년생이란다. 자신이 런던에서 일하면서 받은 젊은 에너지, 매장에서 판매하는 아이템 베이글, 그리고 뮤지엄은 시간의 누적을 표현할 수 있는 자신이 좋아하는 단어란다. 이 세 가지를 합쳐서 된 상호명이 런던베이글뮤지엄이다.


줄을 두 시간 정도 서야 들어간다, 하루 판매량을 정해놓고 소진될 수 있다. 보통 베이글보다 2배 비싸다, 영국 시골마을 식당에 온 듯하다 등등의 희소성과 럭셔리하면서 외국여행 온듯한 기분 등등이 MZ세대의 취향과 욕구를 잘 파고들었다고 한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을 다녀온 결과, 내심 영국인들은 이곳에 오지 않기를 바랬다. 엘리자베스2세 영국 여왕의 왕관 쓴 젊은 시절 사진이 여기저기 보이고 (초상권 무단사용 논란?) 유니언 잭이 인테리어 곳곳에, 포장지에도 나부낀다.

K-콘텐츠의 대박이라고 하기에는, ‘도쿄 김치 박물관’ 같은 국적불명의 이름이 젊은층에게 먹힌다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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