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 대부분의 기간에 걸쳐 거의 모든 근로자들의 ‘은퇴플랜’은 너무나도 단순했다. ‘죽음’이 그것이었다. 현재의 기준으로 노인이 될 때까지 살 수 있는 것 자체가 아주 어려웠기 때문이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어서 나이가 너무 많이 들어 죽는 것 자체를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길 정도였다. 평생 일을 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생의 사이클이었다.
하지만 문명과 의술의 발달로 수명이 늘어나면서 일정 연령이 되면 노동의 일선에서 물러나 여생을 조금은 한가롭고 여유롭게 보내는 라이프스타일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경우 20세기 들어 경제가 성장하고 소셜시큐리티 제도가 도입되면서 많은 근로자들은 좀 더 일찍 은퇴생활에 돌입할 수 있게 됐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소셜시큐리티 풀 베니핏 수혜연령이 상향되고 기업들의 연금플랜들이 사라지면서 은퇴연령을 늦추는 트렌드가 확연해졌다. 평균수명의 지속적인 증가와 물가상승에 따른 생활비 부담 증가 등도 이런 트렌드에 한몫 했다.
1990년 미국 노동인력 가운데 55세 이상이 차지한 비율은 10%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 비율이 무려 23%로 늘어났다. 그리고 향후 10년 동안 이 비율은 전혀 변동이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직업시장이 ‘침묵의 세대’로부터 ‘Z세대’에 이르기까지 무려 다섯 세대로 구성돼 있다며 이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일이라고 지적한다. 너무 많은 세대들로 북적이다보니 순환이 잘 안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인생 사이클이라는 순환도로에서 앞선 세대들이 잘 빠져나가지 않다보니 극심한 체증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커리어의 첫 단계부터 체증 현상에 따른 영향을 절감하게 된다. 시작하기도 힘들고 일단 진입한다고 해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속도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학계의 경우 젊은 학자들은 펠로우십과 포스닥 프로그램에서 이전보다 더 많은 기간을 보내면서 교수직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소득 면에서도 젊은이들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35세 이하 근로자들과 55세 이상 근로자들의 봉급 격차가 1980년의 경우에는 25% 정도였으나 이후 계속 늘어나 2015년에는 50% 가깝게 훌쩍 더 벌어졌다. 수많은 젊은 근로자들이 “이러다가는 집 사기도 힘들 것 같고 아이들을 가질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며 푸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직업시장의 극심한 정체 현상은 많은 부작용을 초래한다. 이 문제를 연구해 온 경제학자 가브리엘 과이톨리와 로베르토 판크라지는 무엇보다도 이 같은 현상이 사회적 응집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고령화 추세 속에서 일자리 문제는 점차 세대 간의 경쟁과 갈등의 양상으로 진행돼 오고 있다.
노인들의 젊은이들을 향한 시선보다, 젊은이들의 노인들을 향한 시선이 한층 더 부정적이라는 한 사회학 연구 결과는 우울함을 안겨준다. 나이 든 사람들이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있는 것으로 여기는 인식이 확산되면 사회적인 결속은 저해될 수밖에 없다.
법조계의 경우 젊은 변호사들을 위한 승진 단계로 ‘어소시에이트 트랙’을 만드는 등 세대 정체 해소를 위해 나름 고민하고 있다. 스타트업 창업을 더 독려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다섯 세대로 북적거리는 직업시장은 초유의 현상인 만큼 단시간에 체증을 해소하기는 힘들다. 그만큼 많은 시간과 중지가 요구되는 과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