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추석 단상

2024-09-17 (화) 채수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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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추석은 설날과 더불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멩일(명절)이었다. 엄마가 새로 사주신 추석빔을 입고 차례 지낼 음식을 장만하느라 분주한 부엌과 대청마루를 드나들며 밤이며 다식이며 과일 등 맛있는 것을 실컷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캐한 장작 연기와 전부치는 고소한 냄새가 새어나오는 부엌은 언제나 아이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어린 내가 부엌을 기웃거리면 큰어머니께서 ‘남자가 부엌에 들어오면 고추 떨어진다’고 웃으시며 부치던 전을 한 조각 건네주시곤 했다.

추석 전날은 서울에서 작은 아버님 내외분이 사촌형제들을 데리고 명절을 쇠러 온양으로 내려오셔서 집안을 반가운 활기로 가득 채웠다. 작은 아버님은 내가 바지에 혁대를 매지 않고 다니는 것을 보시고 ‘남자가 혁대를 매고다녀야 뱃심이 생기지’ 하고 웃으셨다. 할머니는 서울에서 내려온 손자와 손녀들을 특히 귀여워하셨는데 방안 그득히 앉아 재잘거리는 사촌들을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보셨다.


추석날이 되면 어른과 아이들은 새옷으로 갈아 입고 차례지낼 준비를 하였다. 지방 쓰기와 음식준비가 모두 끝나면 고조부 부터 차례를 모시기 시작한다. 아버님과 작은 아버님이 나란히 서서 절을 올리시면 아이들은 뒤에서 어른들을 따라 두번 절을 하고 여자들은 네번 절을 했다.

다음에는 어른들이 순서대로 조상님들께 잔을 올렸다. 잔올리기와 절을 마친 다음에는 밥그릇 뚜껑을 여는 개함을 하고 모두들 제삿상 앞에 한참동안 엎드려 부복을 한다. 아버님이 에헴 하고 헛기침으로 신호를 하실 때까지 엎드려 있어야 하는데 그 엄숙한 순간에 왜 그렇게 웃음이 나오는지 아이들은 하나같이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조상에 대한 제사가모두 끝나면 가족과 친척이 둘러앉아 아침을 먹은 후 성묘를 간다. 아버님과 숙부가 산지기 할아버지와 함께 앞장서시고 아이들은 뒤 따라 산에올랐다. 할아버지 산소에서 내려다보면 멀리 설화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그 아래로 온양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왔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는 서울서 내려온 아들 내외와 손주들을 보시고 흐뭇해 하시던 할머니도 할아버지 산소에 묻히셨으며 검은 두루마기 자락을 휘날리며 앞장 서 산소에 오르시던 아버님과 작은 아버님도 그 옆에 묻히셨다.

흐르는 세월따라 세태가 변하니 언제까지고 그자리에 있을 것만 같던 조상의 산소에도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조상들의 유해는 파묘하여 화장한 후 서울근교 납골당에 모셔졌다.

산소앞에 서 있던 비석들은 배를타고 태평양을 건너 아칸사주 사촌동생 농장으로 옮겨졌다. 농장안에 커다란 봉분을 만들고 그 앞에 비석을 나란히 세워놓은 것이다. 명절때면 한국과 미국에서 자손들이 제사를 지내니 조상님들이 태평양을 오가며 제삿상을 받으시느라 매우 바쁘실 것 같다.

<채수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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