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신성한 기억’

2024-09-16 (월)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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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창세기 12장’ 중에서)
아브라함은 신성한 기억력(sacred memory)이 탁월했다. 아브라함의 신성한 기억은 하나님의 언약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살아 온 일가친척과 거주지를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떠난다. 어떤 이는 성공을 위하여, 학업과 직장을 찾아 떠난다. 위대한 노마드(Nomad) 였던 아브라함의 떠남에는 남다른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결단을 내리고 고향과 친척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너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받을 축복의 내용 안에는 아브라함 자신이 복 받는 것만 들어있지 않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복을 가져올 수 있게 하기위하여 그가 복을 받게 된다는 이타적 책임윤리가 그 안에 내포되어있다. 아브라함은 평생 이 사실을 기억했다.


경계나 울타리가 없이 펼쳐지는 아브라함의 유목적 삶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언약기억은 장엄한 신앙행위였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입성하고 난 후에 여러 번 실수하고 믿음이 흔들린 적이 있다. 그때마다 아브라함은 이 신성한 기억을 되살려 냈고, 기억의 회상(回想)을 통하여 그의 신앙 정체성을 지켜내었다. 이기적 산술 계산이 영민했던 조카 롯이 더 비옥한 땅을 차지했을 때에도 아브라함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기억을 신성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5천년 인류역사 속에서 유대인이 문명 혹은 문화의 주인이 된 경우는 거의 없다. 유대인은 군사 패권을 손에 쥐어본 적도 없는 지중해 변방의 소수민족에 불과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신성한 기억이 관솔불처럼 아브라함의 후손들 가슴속에 타오르고 있다.

AD 70년 로마에게 정복당한 유다는 후 전 세계로 흩어 디아스포라 나그네가 되었다. 이때 아브라함이 넘겨준 신성한 기억은 예수의 12제자와 사도 바울에 의해 회상되어 재 발화(發火)되었다. 재 발화된 신성한 불길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이방인 세계를 비추고 있다.

단순한 과거의 회상은 무의미하며 어떤 에너지가 생성되지 않는다. 기억이 신성하게 소환되어 성령의 능력으로 발화할 때, 세상 문명과 문화를 가로질러 인류의 정신을 깨워 일으킬 때, 신성한 기억의 소유자는 미래를 현재화하는 새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 당신은 미래의 도약을 꿈꾸는 리더인가. 아브라함처럼 신성한 기억의 대가가 되라. 예수는 신성한 기억을 잊어버린 베드로에게 말했다. “네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수 없더냐.”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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