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한국춤 마법에 빠진 외국인

2024-09-06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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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21일 서울 국립국악원 우면당 로비에서 노란머리 파란 눈의 미인들이 화사한 한복을 떨쳐입고 공연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국립남도국악원 개원 20주년 기념 ‘한국을 가슴에 품다’ 해외동포 및 국악단체 특별초청 공연날이었다.

“설마 저 금발 벽안 미인들이 한국춤을 춘다고?” 했는데, 무대에 선 그녀들은 완벽했다.
책상다리를 한 채 징, 장구, 꽹과리, 북을 치며 집단적 신명을 이끌어낸 사물놀이팀은 금발이 4명, 흑발이 1명으로 모두 헝가리인이다. 2015년 결성된 헝가리 민들레는 다양한 직업을 지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였다고 한다.

에스토니아 아리랑 무용단은 1996년 결성되어 폴란드, 이태리까지 순회공연을 하면서 한국문화를 알린다. 이날, 매향을 통해 여성의 고귀함을 표현했다.
러시아 소운무용단의 대표는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갔다가 새로운 친구와 가족을 만들었고 무용단이 창립된 2003년부터 20년 이상 한국춤을 추어오고 있다.


러시아 문화의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공연을 하면서 한국 정신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소운무용단은 20세기 신무용의 창작 작품인 부채춤을 보여주었는데 소도구인 부채의 독특한 정서가 화려하고도 우아했다. 부채춤은 처음에 독무로 선보였고 군무로 재구성되었는데 최초 원작자는 김백봉씨다. 1964년 멕시코 올림픽을 계기로 부채춤이 한국춤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특히 이 날, 뉴욕에서 온 뉴욕한국공연예술센터(설립자 박수연)는 소고춤을 보여주었는데 악기와 춤이 일체가 되어 다양한 가락을 갖고 놀았다. 관객까지 들썩이는 흥에 몰입돼 저절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여는 굿으로 무대를 연 러시아 전통소리 맥 멤버 7명도 대부분 타인종인데 남도국악원에서 여러 차례 연수를 받았다고 한다. 무대에서 발표하고 싶은 내용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배웠다는 그들은 신명나게 한바탕 무대를 뒤집어놓았다.

한편, 한국춤은 궁중에서 추어진 궁중춤과 민간에서 전승되는 민속춤으로 나눠진다. 민속춤은 일반인의 춤으로 한국인의 정신과 정서가 배어있다. 이 민속춤에는 ‘잘 춘다, 얼씨구’ 하는 추임새가 있어야 무대 위 예인들이 신명을 한층 더 심화시키게 된다.

사실 한국 춤동작이나 소리를 제대로 알고 표현하는 한국인들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 춤, 우리 소리임에도 잘 모르는 한인들이 많은데, 한국인 정서를 잘 나타내 준 이 외국인들은 언제부터 우리 춤을 배웠을까?

2006년 뉴저지의 입양아 캠프에서 온 전화 한 통으로 이 뜻깊은 문화사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뉴저지 입양아 캠프는 한국에서 입양된 아이들이 여름에 모여 한국 전통문화에 대해 배우고 모국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하는 곳이다.


입양아와 부모를 포함한 22명이 한국의 남도국악원을 방문하여 2주간 단소, 사물놀이, 강강술래, 진도북춤을 배웠다. 그 이후 지금까지 19개국, 85개 단체, 2,198명이 참가하였다고 한다. 한국문화를 사랑하는 타인종들이 우리 음악과 춤을 체험한 후 현지에서 한국 국악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수십년간 뉴욕에 사는 한인들은 시민권자, 영주권자, 신분미비자이든 상관없이 미국에서 사는 동안 내내 붙잡고 있는 화두가 ‘한국’이다. 미국의 주인이자 이방인이기도 한 우리들은 조국에 대한 그리움, 미련, 때로 애증이 함께 한다. 그럼에도 정작 한국문화에 대해 잘 모른다.

1990년대부터 한류를 이끈 애니메이션, 한국 드라마, 대중음악, 영화가 2000년대 들어서 온라인 게임, 캐릭터, 패션, 요리가 각광받았다.
지금은 한국 드라마가 문화의 결정체처럼 널리 알려져서 한국의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도 한다. 한국인의 정신과 정서가 밴 공연예술 또한 한류의 영역을 높여가고 있다.

“우리가 처음 장구를 치기 위해 장구채를 들었을 때, 아리랑의 가락을 따라가기 위해 처음으로 가야금 줄을 만졌을 때 어떤 놀라운 마법이 우리를 사로잡아 오늘날까지도 놓지 않고 있다. 우리가 하는 순수한 즐거움은, 힘든 하루일과를 마친 후 우리의 영혼을 밝게 해준다. ”고 한 출연진의 한마디를 잊을 수가 없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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