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두 주 전, 멀리 사는 둘째 아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내가 교회에서 맡게 될 9학년 학생들 그리고 부모들과의 새 학년 시작 전 만남이 다가오는데, 그때 사용할 간단한 비디오를 부탁한 것이다. 나는 그 만남에서 부모들과 학생들에게 서로를 소개하고 각자의 장단점을 한두 가지씩 나누라고 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내 경우를 먼저 학생들과 부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나에 대한 내용을 둘째 아들에게 부탁했다. 고맙게도 둘째는 나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각 주제에 하나씩 짧은 비디오 클립 세 개를 보내왔다. 그런데 그것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이제 30대가 된 두 아들을 키우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사실 내가 애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본인들로부터 직접 들을 기회는 거의 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큰애가 초등학교 때 쓴 일기장에서 방학인데도 부모들이 이것저것 하라고 잔소리한다는 불평을 읽어본 적이 있다. 방학이니 좀 편히 쉬라고 하면서도, 보이스카우트 캠프를 다녀와 피곤한 자신에게 그렇게 하면 어떻게 편히 쉬겠냐며 부모들이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일침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그 것이 내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잔소리하는 것은 ‘내가 아니고 엄마이니까’라고 자위하면서 말이다. 나는 잔소리꾼이 아니지 않느냐고 속으로 되뇌였다.
아이들이 틴에이저가 되고, 대학에 가기 위해 집을 떠난 후 나누던 대화들 중 사안에 따라 가끔 서로 견해가 다른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의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그런 대화를 진지하게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건강한 모습일 것이다. 오히려 아이들이 나를 구세대라고 치부하지 않고 대화해 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아이들이 내 이야기도 경청하고, 나도 아이들의 앞선 생각을 부분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어서 말이다.
때로는 같이 웃고, 때로는 함께 격분하며, 가끔은 격려의 말도 건넬 수 있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나에 대해 진정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대화는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잘하고, 무엇은 어떻게 개선해야 한다는 일방적인 훈시는 있었지만, 아이들로부터 같은 이야기를 내가 들어본 적도, 그런 기회를 준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둘째로부터 받은 비디오 내용들은 어쩌면 내가 이미 오래전에 들어볼 기회를 가졌어야 했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나를 소개하는 내용은 내가 짐작 가능한 것들이 주로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잊고 있었던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겨우 30초밖에 안 되는 비디오에 담긴 것을 보니,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이 둘째에게는 오래 기억에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耳順)의 나이가 된 지도 여러 해가 지났는데, 내 귀는 아직도 거칠기만 한 것 같다. 그래도 아들이 들려준 지적 사항을 곱씹어 보면서, 아들에게 반박 대신 고맙다는 인사 메시지를 보낸 것은 다행이다. 힘들지만 앞으로도 이런 얘기를 가끔 들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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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페어팩스카운티 교육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