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할리웃보울: 김선욱 강주미 최하영

2024-07-31 (수)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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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할리웃보울 콘서트는 ‘올 베토벤 나잇’이었다. 데이빗 로벗슨 지휘의 LA필하모닉이 베토벤의 코리올란 서곡과 트리플 콘체르토, 교향곡 5번을 연주했다. 그리고 트리플 콘체르토의 협주자들로는 피아니스트 김선욱,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그리고 첼리스트 최하영이 무대에 오른 특별한 공연이었다.

삼중협주곡을 뜻하는 ‘트리플 콘체르토’(Triple Concerto)는 베토벤의 중기 걸작 중 하나이지만 자주 연주되지 않는 작품이다. 하나의 솔로악기가 나서는 보통 협주곡과 달리 3개의 솔로악기가 오케스트라와 협주하는 파격적인 구성인 탓이다. 솔로이스트 3명 사이의 호흡은 물론 이들과 관현악의 균형과 조화도 중요한 것이다.

공연장 입장에서는 훌륭한 독주자 세 명을 한 무대에 올리기가 쉽지 않다. 세 사람의 합도 좋아야하지만 국제적인 명성도 비슷한 수준이어야 하는 탓이다.


또 하나 어려운 점은 삼중협주곡이라고는 하지만 거의 첼로협주곡이라고 해도 될 만큼 첼로의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언제나 주인공이던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가 여기서는 첼로를 보조하는 느낌이 강하다보니 무대를 성사시키기가 쉽지 않은 면이 있다. 베토벤은 피아노 협주곡 5개와 1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썼지만 첼로 협주곡은 한 곡도 쓰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트리플 콘체르토에서는 3악장 내내 첼로가 중심이 되어 멜로디를 리드해간다.

LA필이 할리웃보울에서 이 협주곡을 연주한 것은 꼭 10년 전인 2014년 7월이다. 그때 구스타보 두다멜의 지휘로 장 이브 티보데(피아노)와 르노 카푸송(바이올린), 고티에 카푸송(첼로) 형제가 협연했는데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멋진 공연이었다.

이날 김선욱·강주미·최하영의 연주는 젊고 다이내믹했다. 김선욱의 피아노가 거의 축이 되어 코리안 트리오를 이끌어갔다. 강주미는 섬세하고 빛나는 음색으로 기품있는 바이올린 연주를 들려주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군더더기 없는 연주였다.

한편 최하영은 기술적으론 나무랄 데 없었으나 혼자 좀 튀는 느낌이었다. 앞서 말했듯 첼로가 중요한 협연인데 너무 힘을 주느라 함께 녹아들어야할 순간들을 흘려보내는 느낌이었다. 셋 중 가장 신인이라 원숙도에서 일체감을 이루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건 실력이나 노력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니 말이다.

최하영(26)은 2011년 브람스 콩쿠르, 2018년 펜데레츠키 콩쿠르, 2022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모두 우승을 차지한 영재 아티스트다. 어린 나이에 비해 대담한 연주와 테크닉, 무르익은 해석 등 최상의 기량을 뽐내며 클래식계에서 신성으로 떠올랐다. 지난달에는 뉴욕 카네기홀에 독주회로 데뷔했으니 앞으로 더 많은 활동이 기대된다.

이에 비해 김선욱(36)과 강주미(37)는 K-클래식을 세계에 알리기 시작한 1980년대 생 출신의 선구적 대표주자들이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임동혁 선우예권,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와 신지아 등과 함께 국내외에서 한국 클래식 음악을 이끌어가는 중간허리라 할 수 있다.

특히 김선욱은 조성진 만큼이나 LA필이 자주 초대하는 피아니스트다. 그는 2021년 11월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엘비라 마디간’)으로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 데뷔했으며, 작년 5월에는 슈만 피아노협주곡의 협연과 함께 실내악 공연에서도 섬세하고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어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는 내년 6월 디즈니 홀에서 열리는 ‘서울 페스티벌’에도 주요 아티스트의 한 명으로 참가할 예정이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은 성악가 부모 사이에서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과 미국 줄리아드,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한 재원이다. 화려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연주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는 그는 바로 지난해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할리웃보울 무대에 데뷔했다. 그녀는 최근 몇 년 동안 베토벤 연주에 집중하고 있으며, 김선욱과 함께 유럽과 한국 무대에서 자주 연주하면서 2021년 베토벤 바이올린소나타 전곡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이처럼 세계 최정상 무대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연주자 3명이 초대된 특별한 공연이었는데 한인 청중의 모습은 많이 보이지 않아서 좀 아쉬웠다. 조성진이나 임윤찬이 왔을 때와는 너무 다른 분위기였다. 다음달 29일 임윤찬이 올 때는 또 얼마나 난리가 날까. 임윤찬은 이날 두다멜과 함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을 연주한다.

한편 할리웃보울은 올여름 시즌부터 파킹 시스템이 크게 달라졌으므로 유의하는 것이 좋겠다. 기존에 있던 1,700여개 주차자리 중 350개를 없애고 셔틀버스와 공유차량 전용사이트를 만든 것이다. 굳이 자기차를 운전하여 가고 싶다면 티켓 살 때 주차자리도 예약해야한다. 가격이 최저 45달러에서 발레 90달러까지 싸지 않다. 그러니까 가능하면 파크 앤 라이드(Park & Ride)나 보울 셔틀(Bowl Shuttle), 우버나 리프트를 이용하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혼란이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여름 밤마다 이 일대에서 벌어지는 교통난을 해소할 수 있는 묘안이라는 게 LA필의 설명이다. 그래서였는지 25일 공연 끝나고 나올 때 전보다 일찍 빠지긴 했다.

할리웃보울은 한번 가기가 어렵지, 일단 가서 자리에 앉으면 “아, 정말 좋다!” 소리가 절로 나오는 미국 최고의 야외공연장이다. 한낮의 더위가 물러난 선선한 바람, 숲 기운의 맑고 싱그러운 공기, 별이 보이는 밤하늘, 격식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분위기, 여기에 와인 한 잔 곁들인다면 무얼 더 바랄 것인가.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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