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평선]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2024-07-24 (수) 박일근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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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 그릇 떠놓고 식을 올렸다. 그러나 수석 입학한 동아대 경영학과까지 때려치우고 가수로 나선 남편의 벌이는 신통치 않았다. 열심히 밤무대를 뛰어도 단칸방을 전전하며 봉지쌀로 끼니를 때우고 연탄 낱장으로 추위를 달래야 했다. 이런 무명 생활이 20년 가까이 이어지며 심신은 지쳐갔다. 그럼에도 아내는 잔소리 한번 없이 옷 장사를 하고 카세트테이프를 팔아 아들딸을 키웠다. 미안했던 남편은 결국 가요계를 떠나기로 마음먹고 마지막으로 어린 나이에 시집와 고생만 한 아내(송애경)에게 바치는 노래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곡이 인기를 끌며 남편은 일약 유명해졌다. 트로트 4대 천왕의 맏형 현철(1942~2024)이 부른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이야기다.

1982년 나온 이 곡은 당시 방송국 PD였던 김양화가 쓴 노랫말에 현철이 직접 곡을 붙인 노래다. 가수의 진심이 담긴 데다 독특한 꺾기 창법으로 호소력까지 커 많은 이의 가슴을 적셨다. 현철이 나훈아와 남진의 그늘에서 벗어난 계기가 됐다. 멀리 떨어진 고국의 아내가 그리웠던 당시 리비아 대수로 공사 근로자들에게도 큰 위로였다. 이들의 요청에 현철은 1987년 현장 공연에도 함께했다.

부인에 대한 사랑을 담은 가요로는 하수영이 1976년 낸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도 빼놓을 수 없다. 임종수 작곡가가 시어머니를 20년 이상 수발한 아내를 위해 만든 노래다. “젖은 손이 애처로워 살며시 잡아본 순간”으로 시작하는 이 곡은 ‘마왕’ 신해철(1968~2014)이 아내(윤원희)를 위한 5집 앨범에 수록하며 역주행하기도 했다. 신해철은 원래 결혼 자체에 거부감이 컸으나 여자 친구가 암에 걸린 걸 안 뒤 든든한 보호자로 곁에 있고 싶어 청혼했다. 그는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남편이나 그 무엇으로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고 할 정도로 애처가였다.

현철은 임종 직전 “고생 많으셨다”는 아내의 말에 10분간 계속 눈물만 흘렸다. 하늘에서도 당신(아내) 생각만 할지 모른다. 현철도 신해철도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이 만들고 부른 노래는 영원히 남을 것이다. 아내에게 감사하면서도 표현력은 없는 대한민국 남편들 마음을 대변할 노래는 계속 애창돼야 한다.

<박일근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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