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이었던가. 미국, 캐나다 북미 2개국, 그리고 영국, 프랑스 등 서유럽 10개국, 모두 12개 국가가 당시 소련의 팽창을 견제해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를 출범시킨 해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함께 핀란드, 스웨덴의 가입으로 회원국이 32개국으로 늘어난 이 동맹조약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나토 헌장 제 5조다. 회원국 가운데 한 나라가 공격을 받으면 회원국 전체에 대한 침공으로 간주해 개별 회원국들이 집단으로 대응한다는 내용이다.
창설 75주년 워싱턴 나토정상회의 개막을 바로 앞선 시점. 퍼시픽 포럼은 이 나토 헌장 제 5조와 관련해 한 가지 가상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긴장관계가 결국 폭발했다. 중국이 하와이에 미사일 공격을 한 것. 그러자 미국은 나토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 나토 헌장 제 5조 발동을 요청했다.
그러나 침묵만 흐를 뿐이었다. 많은 나토동맹국들은 중국과의 통상 중단조차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 정황에 중국과 전쟁이라니…. 일부 유럽국들은 하와이 피습은 나토 헌장 제 5조 자동 발동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견해까지 보였다.’
‘오늘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일은 내일 동아시아에서 일어날 수 있다’- 일찍이 키시다 일본 총리가 한 발언이다.
그 말대로 유럽에서의 안보와 아시아 안보는 더 이상 각자 별개의 영역이 아니다. 이게 중국-러시아-이란-북한 유라시아 독재세력 축이 날뛰는 오늘날 상황에서의 안보환경이다.
이런 정황에서 인도-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이 중국의 공격을 받는다. 그게 하와이가 될 수도 있고 괌이 될 수도 있다. 이 때 어떤 문제가 노정될 것인지를 퍼시픽 포럼은 점검해본 것이다.
멀리 아시아에서 벌어진 상황이다. 때문에 유럽은 나토헌장 5조 해석에 다른 견해를 보이면서 수수방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그럴 경우 동맹 자체가 붕괴될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국의 대만침공을 저지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바로 이 같은 맹점을 지적, 나토 헌장 5조 발동 조건보완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나선 것이다. 관련해 새삼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이 있다. 일찍이 전례가 없다고 할까. 그 정도로 강경한 어조로 중국을 규탄한 워싱턴 나토정상회의 공동성명이다.
나토회원국 정상들은 이틀간의 회의 폐막과 함께 우크라이나 지원, 나토 (전쟁)억지력과 방위력 강화, 그리고 인도-태평양지역과의 파트너십확대 등을 골자로 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우크라이나지원과 억지력 강화 등은 당초부터 예상됐던 의제다. 정작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은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이른바 ‘IP4’(Indo-Pacific Four)가 3년 연속 정상회담에 초청된 사실과 방산협력 강화 등 IP4와의 전략적 연계를 강조하는 내용을 공동성명에 적시 하는 동시에 중국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의 ‘결정적 조력자’로 규정한 것이다.
나토가 중국을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은 나토 창설 75년 만에 처음으로 나토 정상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중국의 러시아 지원은 유럽·대서양 안보위협을 가중시켰다는 비난과 함께 지원을 중단하지 않을 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도 빼놓지 않았다.
나토 정상들은 2019년 런던 회의에서 중국을 ‘동맹이 함께 해결해야 할 도전’ 정도로 규정했다. 2021년 회의에서는 ‘구조적 도전’으로 표현 수위를 높였다. 그러다가 올해 회의에서는 중국에 대한 적대적 인식을 한층 강화한 것이다.
중국에 대한 외교적 자제력을 아예 포기했다고 할까. 그 정도의 거센 수사에, 강경대응, 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트럼프 방어책(Trump-proof)의 일환일 수도 있다는 것이 뉴욕타임스의 지적이다.
나토가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IP4와 보다 강력한 안보협력 망을 구축해 중-러-북 블록의 도발에 제도적으로 대처해 나갈 때, 있을 수도 있는 ‘트럼프의 백악관 재입성’과 함께 일게 될 불안정성이 미연에 방지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지속과 함께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주도 세계질서 와해에 적극 나서는 등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고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의 지적이다.
그 최근의 한 케이스가 푸틴의 평양방문과 함께 이루어진 러-북 군사동맹의 복원이다. 또 다른 케이스는 중국이 사실상 푸틴 러시아의 위성국가인 벨라루스와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와의 접경 지역에서 특수부대 합동 훈련을 실시한 것이다.
‘허약한 바이든’과 ‘예측불가 트럼프’ 사이에서 미 유권자들은 방황하고 있다. 그런데 안보환경은 더욱 위험해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서방동맹은 보다 강경한 입장을 천명했다는 게 워싱턴 나토정상회의에 대한 월 스트리트 저널의 총평이다.
현실적으로 안보환경은 그러면 도대체 얼마나 위험지고 있는 것인가. 앞으로 4년의 기간 동안 미국은 그 규모에서 과거 한국전쟁이나, 월남전을 크게 웃도는 전쟁에 직면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게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경고다.
아시아 포럼의 가상 시나리오 제시를 통한 경고도 다름이 아니다. 유라시아 독재세력 축의 발호시대를 맞아 인도-태평양에서 유사상황이 발생 할 경우 이는 유로-대서양 안보와 바로 직결된다. 이 상황에서 보다 확실한 전쟁 억지력은 나토와 인도-태평양지역 민주국가들의 공동대처에서만 찾아진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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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