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전문가 칼럼] 한일 전략공조, 갈수록 중요해진다

2024-07-10 (수) 신기욱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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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일본 출장 중에 휴일이 있어 오랜만에 긴자에 있는 한 백화점을 둘러봤다. 예상대로 한국인을 포함해 관광객들로 붐볐고 엔화 약세로 전체적인 물가도 내가 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알토는 물론이고 한국보다도 낮다는 인상을 받았다. 백화점 내 4곳의 매장에 들렀는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두 곳에선 영어로 그리고 다른 두 곳에선 일본인 직원들과 한국어로 소통했다는 점이다. 올해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이 약 700만 명으로 최고조에 다다르는 등 한일관계는 완전히 복원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과의 세미나나 정부·기업인들과의 비공개 만남에선 다른 기류를 느낄 수 있었다. 한일관계가 복원된 것에 대해선 이의가 없었지만 한국의 정부가 바뀌면 어떻게 될지에 대한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은 총리가 바뀌어도 현 자민당이 계속 집권할 것이므로 정책에 큰 변화가 없지만,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뒤집은 문재인 정부처럼 한국은 정권에 따라 180도 바뀌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표적인 일본 언론사가 주관한 기업인들과의 비공개 모임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과 3년 후 민주당의 재집권 여부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지지율도 낮지만 내각제를 하고 있는 일본은 총선을 통해 재신임 여부를 묻거나 교체를 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대통령의 하야나 탄핵이 아니고선 정권을 조기에 교체할 수 없기 때문에 낮은 지지율로 고전하는 윤 대통령이 한일관계를 지금처럼 유지할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더 나아가 3년 후 민주당이 재집권할 경우 가까스로 복원된 한일관계가 다시 과거로 회귀하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일본 기업인들이나 전문가들의 관심과 우려는 그만큼 한일관계가 동북아의 평화적 질서 유지에 중요하다는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최근 러시아와 북한 간의 군사적인 밀착으로 북한의 안보 위협은 더욱 커지고 있다. 스탠퍼드 대학의 동료이자 주러시아 대사를 지낸 마이클 맥폴 교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현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깨는 것을 목표로 하는 위험한 지도자로 평가한다. 이러한 푸틴과 김정은과의 밀착은 단순한 정상회담을 넘어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

더구나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한다면 한미, 미일 동맹은 다시 도전을 받을 수 있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집권한 1기와 달리 트럼프가 재집권한다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의 어젠다를 더욱 집요하게 밀어붙일 것이고 동북아의 주요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달리 대만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분명하지 않아, 자칫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줘 대만을 둘러싼 무력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틈타 북한도 한반도에서 일정한 군사적 행동을 한다면 동북아의 평화적 질서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이러한 안보적 상황을 상정한다면 한국과 일본은 전략적으로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동맹국이지만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트럼프의 미국을 마주해야 하고, 러시아와의 밀착으로 더욱 커진 북한의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 중국과는 경제적 이익을 중시하면서도 대만에서의 무력충돌에 대처해야 하는 안보 고차 방정식을 함께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성장·저출산·고령화 등 사회경제적으로도 서로 공유할 분야가 광범위하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긴자의 백화점에서 느꼈던 여유로움과 기업인들과의 만남에서 느꼈던 우려가 오버랩되면서, 겉으로 보이는 평화가 곧 다가올지도 모를 안보의 폭풍전야는 아닐까라는 염려를 떨칠 수 없었다. 윤석열 정부는 남은 3년 동안 한일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며 동북아 평화 유지를 위한 전략적 공조에 힘써야 한다.

<신기욱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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