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안 외교
2024-07-08 (월)
임석훈 / 서울경제 논설위원
2018년 4월 호주 멜버른공과대 도서관에서 악취가 나자 공부하던 학생들이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과 소방관들은 화학물질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도서관에 있던 학생·직원 등 500여 명을 건물 외부로 대피시켰다. 소방관들이 검역 장비를 동원해 도서관 내부를 샅샅이 수색하던 중 천장에서 버려진 열대 과일 두리안을 발견했다. 두리안에서 나는 특유의 역한 냄새가 환기 시스템을 통해 도서관 전체로 퍼진 것이었다.
두리안은 태국·베트남·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자라는 열대 과일이다. 양파가 썩을 때 나는 것과 비슷하게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만 노란 과육은 달콤하고 버터처럼 부드러워 ‘악마의 과일’ ‘과일의 왕’ 등으로 불린다. 세계에서 두리안을 가장 많이 사들이는 나라는 중국이다. 지난해에만 140만 톤, 67억 달러(약 9조 3000억 원)어치를 수입했다. 중국에서 두리안은 1개당 약 150위안(약 3만 원) 정도에 팔린다. 맛이 뛰어나 ‘두리안의 에르메스’라는 별칭이 붙은 ‘무산 킹’ 품종의 가격은 500 위안(약 10만 원)을 호가한다.
중국 정부가 최근 베트남 당국에 베트남산 두리안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3일 보도했다. 중국은 베트남산 두리안에서 과도한 양의 중금속이 검출됐다는 이유를 댔지만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분쟁 중인 베트남을 견제하면서 친중국 행보를 보이는 말레이시아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중국은 지난달 말레이시아산 두리안 수입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SCMP는 “거대한 중국 시장을 이용해 동남아 국가를 길들이는 ‘두리안 외교’”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식품 수입을 무기 삼아 상대국에 경고를 보내는 일이 잦다. 2012년 필리핀과의 관계가 악화했을 때에도 해충 문제를 들어 필리핀산 바나나 수입을 금지했다. 앞으로 중국이 2021년 요소수 사태와 같은 방식으로 한국을 위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의 ‘늑대 전사 외교’에 휘둘리지 않고 상호 존중과 호혜의 한중 관계를 만들려면 힘을 키우고 정교한 외교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임석훈 / 서울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