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타운의 현실과 희망

2024-07-03 (수) 황의경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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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한인타운에서 LA 카운티 끝자락에 붙어있는 근교 도시로 이사를 나온 지 두 달이 조금 안됐다. 회사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살다 왕복 3시간 가까이 운전을 해 출퇴근을 하려니 첫 1~2주는 온 몸이 천근만근에 정신적으로도 스트레스가 심했다. 촘촘한 일상 속에서 줄일 수 있는 시간은 잠자는 시간밖에 없었고, 잠이 부족하니 운전 중 졸음이 쏟아져 뺨을 때리며 퇴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 길이 익숙해지자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퇴근길에 내일 할 일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기도 하고, 영어회화 유튜브를 들으며 큰 소리로 따라하다 혼자 키득키득 웃기도 했다. 어느 날 운전을 하며 콧노래는 부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LA 한인타운을 떠나게 된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첫 번째는 교육이다. 올 여름학기에 킨더가든에 입학하는 아이가 있어 작년 말부터 비상이었다. 당시 살던 아파트 가까운 곳에 초등학교가 있었지만 학업 성취도 점수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가까우니까 등교하기 편하겠다는 생각으로 아이와 학교 앞으로 산책을 갔다가 학교 정문에 ‘무기를 가져오지 마시오’라는 경고 문구를 보고는 마음을 아예 접어버렸다.

사립학교 투어도 다녀봤지만 고등학교까지 10년 넘게 사립을 보내기에는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한인 학생들이 많이 간다는 매그닛 스쿨은 너무 진보적인 교육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말 보내고 싶던 챠터 스쿨은 추첨 대기번호 70번대로 밀려났다. 한인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공립 초등학교를 지원해 놓고 학교에 전화를 걸어 방문해 볼 수 있냐고 물었더니, 한인임이 분명한 학교 직원은 궁금한 것은 웹사이트에서 찾아보라며 학교에 쓸데없이 전화해 자신을 방해하지 말라고 쏴붙였다. 겨우 마음에 드는 학교를 찾았지만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어느 중학교에 보내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다.


두 번째는 치안이다. 사회부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상 범죄소식에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수밖에 없는데,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거나 강도사건 발생을 자주 확인하는 것은 꽤 씁쓸한 일이었다. 눈에 띄게 늘어난 노숙자도 문제였다. 가까운 거리도 걸을 수 없었으며, 자주 차도로 뛰어들어 어떤 때는 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도 조마조마 했다. 한번은 테라스에서 길가에 용변을 보는 노숙자를 목격했는데, 보고 있자니 정말 한숨만 나왔다. 최근 들어서는 맥아더팍에서 한인타운 쪽으로 넘어오는 마약 중독자들이 몸을 폴더같이 접고 정지된 상태로 서 있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수많은 차들이 오가는 6가길 한 구석에서 2~3명이 모여 팔에 바늘을 꼽고 있는 모습도 목격했고, 집 앞 화단에서 주사기가 발견되기도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인타운이 이 정도는 아니었다.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노숙자가 많지 않았고, 주변에 한인이 많아 우리끼리 모여 산다는 안정감이 있었다. 어디 먼 곳에 방문했다가 한인타운으로 들어서면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편안함이 있었다. 학교마다 한인 학생들이 어느 정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아이 키우기 좋은 인프라가 주변에 많았다. 그러나 2008년 4만6,000명 이상 거주하던 한인타운 내 한인 인구는 2024년 현재 2만3,000명대로 떨어졌고 이제는 한인이 별로 없는 한인타운이 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다.

아직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LA시 당국은 인사이드 세이프 프로그램 등을 통해 한인타운 내 노숙자들을 실내로 옮기고 텐트촌을 철거하는 등 환경개선에 노력하고 있다. KYCC 등 많은 비영리단체와 봉사단체들도 타운을 청소하며 가꾸는 일에 열심이다. 그런가하면 윌셔센터-코리아타운 주민의회는 올림픽경찰서 애런 폰세 서장과 주민들이 만나는 자리를 주선해 주민들의 치안에 대한 우려를 관할 경찰서장에게 직접 전달하는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나는 떠났으면서 누군가가 한인타운을 지켜주기 바라는 것은 지나친 이기심일까? 나를 비롯해 이민 초기 한인타운에 의지하며 미국에 뿌리내렸을 수많은 한인들을 위해, 한국의 향수와 정취를 느끼고 싶어 한인타운을 찾는 이들을 위해, 미주 한인들의 마음의 고향 LA 한인타운이 더는 병들지 않고 개선의 방향으로 나아기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황의경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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