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달력에 눈길이 간다. ‘7월 1일’- 이제야 새 달을 맞게 되는 것인가. 정말이지 이상하리만치 길게 느껴진 6월이었다. 본격적 여름과 함께 무더위가 몰려온 탓인가. 아니면….
‘6월은 러시아의 푸틴에게 매우 바쁜 달이었다.’ 한 외신의 지적이다.
러시아 외무부에서의 연설을 통해 말도 안 되는 우크라이나와의 평화협상조건의 윤곽을 밝혔다. 동시에 발표한 것이 중국과 제휴한 국제안보시스템의 대안이다. 이게 6월 14일의 일이다.
그리고 한 주 후 푸틴은 평양을 방문, 김정은의 북한과 사실상의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외부의 침략을 당했을 시 서로간의 군사 개입을 명시한 조약에 서명을 한 것이다. 바로 뒤이은 것이 베트남 방문이다.
숨 돌릴 틈도 없는 광폭행보. 그 가운데 쉴 새 없이 떠벌여댔다. ‘다극체제 세계질서 태동은 불가피 하다’, ‘미국 주도 세계질서는 더 이상 설 곳이 없다’ 등등.
그 모양새가 뭔가에 씌우기라도 한 것 같다. 무엇에 씌워 푸틴은 동분서주하고 있을까.
‘푸틴은 단순히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혁명을 추구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의 진단이다. 2022년 2월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다수의 서방관측통들은 일시적인 지역 위기 정도로 보았다. 오늘날 그 같은 진단은 오류로 드러나고 있다.
푸틴의 목적은 단순히 우크라이나 점령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2차 대전 이후 형성된 미국 주도 안보 시스템 와해를 추구하고 있다. 서방 시스템, 그 자체의 말살이 궁극의 목적으로 이런 점에서 푸틴은 혁명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지의 지적이다.
그러니까 나름의 혁명적 열기랄까, 망상이랄까 하는 것에 사로잡혀 쉬지 않고 광폭행보에 내몰리고 있다는 거다.
지난 20년 푸틴의 집권기간은 한 가지 뚜렷한 특징을 보여 왔다. 한 단계, 한 단계 러시아의 민주주의적 요소를 지워왔다. 동시에 서방과, 서방의 민주적 가치, 제도를 부정하는 캠페인이 강화되어 왔다.
그 결과 내부적으로 러시아 인민에 대한 탄압이 가중됐다. 반면 부와 권력은 크렘린 인사이더들에게 집중됐다. 외부적으로 푸틴은 미국 중심 국제질서에 공공연히 도전, 서방의 제도, 가치관 말살에 앞장 서왔다. 조지아, 시리아, 우크라이나 등지에서의 군사적 개입도 그 일환이다.
푸틴은 서방의 시스템은 러시아의 주권과 가치에 실존적 위협이 되고 있다고 역설한다. 이와 함께 그는 서로 부딪히는 두 가지 미래 비전을 늘어놓는다. 서방 시스템이 그대로 존재하는 가운데 러시아가 전략적 패배를 맞게 되는 경우가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서방 시스템이 대체되고 러시아가 계속 존재하는 경우다.
이런 비전 제시와 함께 푸틴은 러시아는 하나의 역사적 분기점을 맞이한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현존의 세계질서를 무너뜨리고 러시아의 여망에 부응하는 새 국제질서를 건설해야 하는, 그런 기로에 서 있다는 거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없는 유럽, 민주주의 가치관에 근거한 제도가 무너진 유럽이 그가 제시하는 새 안보시스템이다. 북극권에서, 유로-대서양지역에서, 그리고 인도-태평양지역에 이르는 전 영역에서 러시아는 이 비전에 동조하는 세력들과 협력해 미국의 파워를 억눌러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쯤 되면 국가 전략이라기보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혁명 이데올로기 선언에 가깝다. 이것이 동시에 의미하는 것은 푸틴은 전쟁을 쉽게 끝낼 의사가 없다는 거다. 혁명은 결코 중단될 수 없다. 혁명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라도 정당화 된다. 뭐 이런 식의 논리가 작동되어서라고 할까.
혁명의 망상에 사로잡힌 푸틴의 북한 방문, 그리고 김정은과 브로맨스를 과시하면서 체결한 새로운 방위조약. 이를 그러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전 세계적 혁명완수를 위해서는 중동에서 제 2전선을 연 것으로는 부족하다. 극동지역에서 제 3의 전선을 열 필요가 있다. 이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한반도에서의 긴장고조는 한국의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을 어렵게 할 것이다. 그리고 패권세력 미국의 힘을 분산시킨다. 이런 계산이 깔린 것이 푸틴의 극동 행이라는 것이 다수 관측통들의 진단이다.
‘다른 목적도 숨어 있다.’ 미국의 안보 외교 전문지인 내셔널 인터레스트의 분석이다. ‘외부의 침략을 당했을 시 서로간의 군사 개입을 명시한 조약’은 러시아가 점령한 4개 지역 탈환을 위해 우크라이나가 반격에 나설 때 북한군을 끌어들일 일종의 ‘푸틴 트랩’이라는 지적이다.
‘푸틴 트랩’은 김정은으로서도 부쩍 구미가 당기는 안이다. 한국은 과거 월남전에 수십만의 지상군을 파병했다. 이를 통해 한국군은 실전경험을 축적했다. 그리고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경제지원을 받아 경제적 강국으로 부상했다. 이 사실을 김정은은 잘 알고 있어서다.
광기에 찬 이 푸틴의 책략에 한국과 서방은 그러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관련해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은 오는 9~11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이른바 P-4 국가 지도자들이 초청된 이번 정상회의에서 푸틴과 김정은이 보이고 있는 이 망상적 세계관에 맞서는 보다 강력한 안보협력 방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어서다.
정말이지 그 어느 때보다 길게 느껴진 게 2024년 6월 같다.
<
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