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럽을 방문한 미국인들은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최소한 필자는 독일에서 노르웨이를 거쳐 스페인에 이르는 1주일간의 유럽 여행을 통해 그런 느낌을 경험했다. 본국의 미국인들은 입만 열면 우리가 처한 경제적 문제에 불만을 터뜨린다. 반면 유럽인들은 그들이 잘 나가는 미국 경제와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이유를 못내 궁금해 한다.
지난 2008년까지만 해도 미국과 유로존 회원국들의 경제규모는 엇비슷했다. 오늘날 미국의 경제 규모는 유로존의 두배다. 어떤 잣대를 들이대건 결과는 마찬가지다. 유럽인의 평균 소득은 미국인의 수입에 비해 27%가 낮고, 평균임금은 37%의 격차를 보인다.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할 당시, 영국인들은 미합중국의 51번째 주가 될만큼 미국과 가까운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졌다. 그러나 그들의 환상이 현실화 한다면 영국은 1인당 GDP가 미시시피 주민의 평균 소득수준에도 못 미치는,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51번째 주가 된다.
오늘날 유럽의 경제력은 미국의 한참 아래쪽에 위치한다. 유럽의 첨단산업 시장은 미국 기업들의 독무대다. 미국 금융업체들은 유럽 경쟁사들에 비해 훨씬 높은 수익을 올린다. 미국의 에너지 생산은 제조산업 붐을 뒷받침하며 유럽 생산시설의 국내 유치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번 여행 중에 만난 독일의 한 CEO는 “미국은 사업을 하기 쉬운 곳으로 유럽에 비해 규제가 적을 뿐 아니라 에너지 가격 또한 훨씬 낮다”며 “제 정신이 있는 기업인이라면 유럽에 투자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유럽의 2대 석유 업체인 셸과 토털 에너지스는 유럽에서 벗어나 뉴욕증시에 주식을 유통시키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를 인지한 유럽 지도자들은 다투어 일련의 해법을 제시했다. 엔리코 레타와 마리오 드라기 등 두 명의 전직 이탈리아 총리는 유럽 경제의 미끄럼질을 막기 위한 정책 아이디어를 보고서로 작성하는 임무를 맡았다. 레타의 보고서는 이미 나왔고, 이 문제에 관해 드라기가 이야기를 나눈 많은 인사들은 그가 어떤 제안을 내놓을지 확실한 감을 잡고 있다. 둘이 중점적으로 언급할 핵심 이슈는 유럽이 조각조각 갈라져 있다는 점이다.
테크놀로지 산업을 들여다보면 마치 프리즘을 통해서 보듯 유럽이 지닌 문제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디지털 산업을 키우기 위해선 탁월한 엔지니어링 재능과 자본이 있어야 하고 손쉽게 신상품을 풀어놓을 수 있는 거대한 시장이 필요하다. 미국과 중국은 이 세가지 요소를 두루 갖추었다. 유럽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재능을 지닌 엔지니어와 자본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것과 달리 유럽은 결코 하나로 통합된 단일시장이 아니다.
유럽의 첨단기업 창업자들은 각개 담당기관을 통해 서로 다른 규제와 표준 및 요건을 시행하는 27개의 ‘쪼가리 시장’을 헤쳐 나가야 한다. 레타가 자신의 보고서에서 지적하듯 유럽은 33조 유로의 민간 저축액을 보유하고 있지만 매년 3,000억 유로가 보다 나은 투자처를 찾아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고 이들 대부분이 미국으로 유입된다.
유럽이 직면한 도전은 EU 회원국들의 지정학적인 조건을 반영한다. 유럽은 통합된 국방외교정책을 지닌 듯 행동하는 국가들의 집단이다. 회원국들의 국방예산이 조금씩 오르는 추세이긴 하나 냉전 종식 이후 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친 터라 여전히 지나치리만큼 낮은 수준이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이다. 1980년대에 서독은 이른바 ‘풀다 갭’ 지역을 통한 소련의 기습공격에 대비해 이곳에 배치된 50만 명의 정예군에게 비상경계 태세를 유지하도록 했다. 통일된 독일의 현 상황은 다르다. 독일 정규군 규모는 20만 명 이하로 축소됐고 경계등급도 낮아졌다. 한때 전 세계의 바다를 제패했던 영국의 해군력은 17세기 당시에 비해 현저히 쇠약해졌다. 현재 진행 중인 군비증강 노력에도 불구하고 승조원 부족으로 인해 최근에는 전함 두 척이 퇴역했다.
유럽의 국가들은 지금도 상당한 액수의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지만 이를 더욱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 유럽 방위와 관련해 개별국 사이의 조율이 거의 없고 집단 방어체제를 활성화할 대전략 또한 부재한 상태이기 때문에 국방비의 상당부분이 바람 빠지듯 새어나간다. 대다수의 서유럽국가들은 개별적인 지역방어에 예산을 사용할 게 아니라 실질적인 위협의 원점인 동유럽 전선에 방어역량을 집중할 수 있도록 그곳으로 기존의 병력과 장비를 이동해야 한다. 생각해보라 누가 유럽 서안에 위치한 벨기에를 침략하겠는가?
여기서도 앞서 언급된 것과 유사한 상황이 반복된다. 유럽에는 대륙 전역을 감당할만한 규모의 방위업체가 없기 때문에 군비지출의 대부분은 미국 방산업체로 흘러들어간다.
유럽 문제의 해법은 단 한 줄로 요약이 가능하다. 지금보다 더욱 깊숙이 통합되고 전략화 되어야 한다. 이같은 해법은 유럽연합에 더 큰 힘을 안겨주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지난주 유럽에서 치러진 여러 선거 결과가 분명하게 보여주듯 강력한 ‘포퓰리스트 역풍’을 불러온다. 유럽의 한 정치인은 필자에게 유럽이 처한 딜레마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문제해결을 위해 무얼 해야 할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일을 한 뒤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유럽연합 건립자 가운데 한 명인 장 모네의 말을 인용하는 것이 아마도 이에 대한 최상의 답변이 될 듯하다. “유럽은 위기 속에서 다듬어진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채택한 여러 해법의 총합이 유럽이다.”
우리에게도 위기가 있다. 이 위기가 여러 해법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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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