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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아이들

2024-06-19 (수)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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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 헌터 바이든(54)이 마약복용 사실을 숨기고 권총을 취득한 혐의에 대해 지난주 유죄평결을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성추문 입막음 돈 재판에서 유죄 평결을 받은 지 꼭 12일만이다.

미국 역사에서 전직 대통령이 유죄판결을 받은 일도 처음이고, 잇달아 현직 대통령의 자녀가 형사 기소돼 유죄평결을 받은 것도 처음이니 2024 대선은 여러모로 기록적이다. 최고령인 전 현직 대통령이 4년 만에 다시 맞붙은 것도 그렇지만, 똑같이 사법리스크의 무게를 안고 캠페인에 돌입한 것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헌터 바이든이 델라웨어주 지방법원 배심원단으로부터 유죄평결을 받은 세가지 혐의는 그가 코케인에 중독됐던 2018년, 총기구입 시 작성하는 서류에 ‘불법약물을 사용하거나 중독되지 않았다’고 허위사실을 적었고, 이를 진실된 내용이라고 서명했고, 불법으로 총기를 소지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2021년 헌터가 자서전에서 스스로 밝힌 것으로, 이 때문에 검찰에 기소돼 법정에 서게 됐으니 화를 자초한 감이 있다.


사안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이런 범죄에 초범이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는 드물다. 그는 총기를 사용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당시 연인관계였던 형수(2015년 사망한 바이든 대통령의 장남 보 바이든의 아내)가 총기취득 사실을 알고 놀라 권총을 쓰레기통에 버렸기 때문에 11일 동안만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보다 바이든 가족이 실제로 긴장해야하는 사안은 오는 9월 LA에서 열리는 헌터의 탈세혐의 재판이다. 바이든의 부통령 시절, 헌터가 우크라이나 에너지기업 부리스마 홀딩스 임원으로 영입돼 거액을 받았다는 의혹에 관한 재판이다. 이 문제는 공화당이 하원에서 대통령 탄핵 조사까지 진행 중에 있어 바이든 선거 캠프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대선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지만, 자녀와 가족 문제로 곤욕을 치른 미국 대통령은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특히나 미성년 자녀가 백악관에서 함께 살았던 경우, 사소한 일탈도 스캔들로 비화하여 전국적인 관심을 모으곤 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쌍둥이 딸인 제나와 바바라 부시가 미성년이던 2001년 위조된 ID를 사용해 술을 마시다 경범죄로 걸린 일이 대표적이다.

경호원들에게 ‘골치덩어리(Headache)’란 코드네임으로 불렸던 빌 클린턴 대통령의 이복동생 로저 클린턴은 마피아로부터 롤렉스시계를 받는가 하면 음주운전으로 체포됐으며, 마약 소지와 밀매 혐의로 실형을 살다가 클린턴이 퇴임 직전 그를 사면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큰딸 패티 데이비스는 부모와 사이가 나빠지면서 레이건이라는 성을 버렸다. 아버지는 위선자이고, 어머니 낸시 여사가 자신을 학대했다고 주장한 그녀는 비난과 반항의 표시로 1994년 플레이보이 커버로 전면누드 사진을 찍기까지 했다. 그러나 10년 후 레이건이 알츠하이머병으로 타계했을 때는 아버지에 대한 후회를 담은 자서전 ‘기나긴 이별(The Long Goodbye)’을 출간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재임시절 동생 빌리가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를 위해 로비를 벌였다는 ‘빌리 게이트’ 의혹과 반유대주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고, 퇴임 후에는 딸 에이미가 급진주의자들과 함께 미국의 외교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다 체포되어 재판을 받기도 했다.

20세기 초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딸 앨리스는 유명한 ‘파티걸’로 거의 매일 타블로이드를 장식했다. 앨리스는 생모가 출산 직후 사망했고 새어머니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17세에 백악관에 들어가자마자 사교계에 데뷔하여 공개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고, 밤새 파티를 하고, 남자들과 어울려 돌아다니는 등 반항적으로 갈등을 표출했다. 상당한 미인이며 똑똑하고 고집세고 거침없는 말빨로 가는 곳마다 화제를 몰고 다녔던 그녀는 백악관의 엄격한 룰이나 당시의 조신한 숙녀상을 완전히 무시한 채 자유분방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앨리스의 와일드한 행보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보다 대리만족을 얻으며 두둔하는 국민이 더 많았다는 사실이다. 당시 백악관은 앨리스에게 오는 팬레터를 전담 관리하는 리셉셔니스트를 따로 두어야 했을 정도로 대통령보다 더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가장 역대급 말썽을 부린 자녀는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의 입양아들 존 페인 토드였다. 매디슨 대통령은 43세 때 돌리 페인이라는 여성과 결혼했으며 그녀가 첫 결혼에서 낳아 데려온 토드를 친자식처럼 키웠다. 하지만 그는 음주, 도박, 여자에 빠져 살았고 수차례 사기사건을 일으켜 감옥신세를 졌으며 그때마다 매디슨 대통령이 대농장을 저당 잡혀 빚을 갚아줬다. 토드는 매디슨의 사후에 유산으로 받은 농장까지 모두 날려버렸다.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하지만 그의 가족을 선택할 수는 없다. 대통령의 가족 역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어느 날 갑자기 전 국민의 관심과 함께 일거수일투족이 가십의 대상이 돼버린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운영할 수 있고, 아버지로서 앨리스를 돌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는 없다.”

아들의 유죄평결이 나오자마자 헬기를 타고 날아와 헌터를 굳게 포옹한 바이든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대통령이지만 아버지이기도 하다. 우리 가족은 언제나 헌터를 위해 사랑과 지지를 보낼 것이고, 이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공인의 가족은 공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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