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서 ‘허상’과 ‘허울’을 검색하면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실제와 다르게 보이는 모습’, ‘실속은 없으면서 겉모습만 번지르르하다’라고 각각 정의했다.
서두부터 국어사진을 꺼낸 이유는 도요타와 혼다자동차 등에서 지난 수십 년간 대규모 허위 품질인증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나 일본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파문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언론과 자동차 업계는 이번 사태가 일본 자동차 산업과 일본차 품질의 ‘허상’과 ‘허울’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도요타와 혼다가 어떤 기업인가. 일본 자동차 업체는 물론 일본 제조업체 전체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기업들이다.
한국에 반도체가 핵심 산업이라면 일본은 자동차 산업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토종 자동차 기업이 사실상 현대차그룹(현대차·기아·제네시스) 하나로 줄어든 반면 일본은 거의 10개에 육박한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일본 자동차 브랜드만 해도 도요타, 혼다, 닛산, 수바루, 마즈다, 미쓰비시 등 6개에 달하며 이들 제조사의 럭서리 브랜드까지 합치면 10개가 훌쩍 넘는다. 또한 도요타와 혼다는 많은 한인들이 오랫동안 ‘품질의 대명사’라고 믿으면서 맹신하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과 공영방송 NHK 등에 따르면 일본 국토교통성은 도요타를 비롯해 혼다, 마즈다, 스즈키, 야마하 발동기 등 5개 업체로부터 자동차 성능 시험에서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이들 업체가 인증 부정을 신고한 모델은 모두 38개에 달한다. 국토교통성은 6개 생산 모델에 대해 출하 정지를 지시했다. 닛케이는 “인증 부정이 일본 차 신뢰에 큰 상처를 줬다”며 “품질을 무기로 세계에서 사업을 확대한 일본차에 동요가 일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국토교통성은 다이하쓰가 자동차와 엔진을 대량 생산할 때 필요한 인증인 ‘형식 지정’ 취득 과정에서 대규모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다른 업체에 유사 사례가 있는지 조사하도록 지시한 바 있다.
도요타의 허위 품질인증 모델에는 코롤라 등과 프리미엄 브랜드인 렉서스 모델들이 포함됐다. 코롤라는 도요타가 1966년 출시 이후 5,000만대 이상을 생산해 일본에서 이른바 ‘국민차’로 불리는 차종이며 미국에서도 가장 잘 팔리는 모델 중 하나이다. 도요타는 보행자 보호 시험과 관련해 허위 자료를 제출하거나 충돌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범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정행위는 2014년부터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회장은 2022년 이후 히노자동차, 다이하쓰, 도요타자동직기(도요타 인더스트리즈) 등 자회사와 계열사에서 연이어 부정행위가 드러나자 지난 1월 30일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한 데 이어 불과 4개월 남짓 만에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같은 소식에 도요타 주가는 5%나 급락하고 시가총액도 200억달러 가까이 증발했다.
앞서 지난 1월 또 다른 유명 기업 파나소닉은 40년간 인증 부정 취득이 들통 나면서 일본사회에 충격을 주었었다
이번 자동차 인증부정 사태로 일본은 물론 한국과 미국 등에서 대규모 리콜 사태도 예상된다.
실제 한국 국토교통부는 7일 한국에 수입되는 렉서스 RX 등 차종에 대해 조사에 나설 방침을 밝혔다.
많은 한인들도 이제는 일본차가 품질과 성능, 디자인과 가성비 측면에서 한국 차에 대한 우위를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기자의 30년 한인 정비소 업주 지인은 “일본차 품질과 성능이 예전 같지 않고 고장도 잦다”며 “한국인의 손재주가 자동차 제조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1970, 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코끼리 밥솥은 한국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일본에 가면 누구나 하나쯤 구입했고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요즘 코끼리 밥솥을 사용하는 한국인이 누가 있나. 그런데 지금은 렉서스 차량이 일부 한국과 미주한인 여성들의 ‘코끼리 밥솥’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 가전산업의 대표주자 소니가 판매하는 대형 고급 TV 패널에 LG가 제작하는 올레드 패널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은 모른다. 미국에서 일본산 가전제품은 삼성과 LG에 밀려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됐다.
기자는 지난 20년간 한국 차만 5대 연속 리스해서 잘 타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가전제품도 한국 제품을 사용한다. 기자가 항상 주장하는 ‘의식적인 소비’의 작은 실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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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환동 편집기획국장·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