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ㅊㅋㅊㅋ 보고 싶구나”
얼마 전 생일날, 가족 카톡방에 한국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축하 메시지를 남기셨다. 보고 싶구나. 기억이 맞다면 아버지께서 이 말씀을, 이렇게 직접 하신 건 처음이었다. 쑥스럽기도, 당황스럽기도 해서 별다른 반응을 못하고 그냥 지나갔다. 하지만 보고 싶구나 라는 그 다섯 글자가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우리 아버지도 이제 이렇게 나이 드시는구나, 딸에게 보고 싶다는 말씀을 다 하시고, 생각하니 코끝이 찡하게 아파왔다.
아버지와는 딱 서른 살 차이가 난다. 아버지 서른하나에 내가 태어나 한 살이 되었고, 내가 열 살 되던 해, 아버지는 마흔이 되셨다. 그래서인지 내 나이 마흔을 지나면서부터는 아버지의 시간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마흔은 어땠을지, 마흔 하나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버지의 마음으로 아버지의 시간을 상상해보곤 했다.
아버지의 마흔 즈음, 나의 아버지 역시 직장생활 10년을 넘어가며 한참 바쁘게 일하고 계셨겠구나 싶다. 아버지는 33년을 한 회사에서 일하시고 은퇴하셨으니, 마흔쯤에는 승진도 앞두고 계셨을 터다. 1980년대 중반, 한국 경제는 급성장하고 있었고, 대한민국의 여느 아버지처럼 우리 아버지도 일하시느라 정신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었나보다. 어릴 땐 기억 많은 부분에 아버지가 없는 것을 불평하곤 했는데 마흔을 지나면서부터는 아버지의 시간을 이해하게 됐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말씀이나 행동에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한 것도 이 때쯤부터다. 아버지와 비슷한 상황들을 겪다보니, 결코 안 될 것 같던 ‘이해’도 되곤 했다. 대표적인 일이 바로 운동화 사건이다. 이 일을 오랫동안 기억하는 건 억울해서다.
새 운동화를 사고 아버지께 혼이 났다.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신발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 운동화는 너무 비싸다고 사주지 않으셨다. 결국 조금 더 저렴한 운동화로 사서 신이 났던 날,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께 ‘세트’로 혼이 났다. 그날 아버진 홍수 이야길 하셨던 것 같다. 집이 떠내려가고,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울고 있는데, 비싼 운동화를 사들고 들어와 자랑할 기분이 나냐는 그런 내용이었다. 나는 그저 억울했다. 아이들이 신고 다니는 유명 브랜드 신발도 아닌 데, 왜 혼이 나야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땐 홍수와 운동화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알지도 못했다.
시간이 흘렀고, 나에게도 어느 날 그날의 홍수 같은 일이 생겼다. 유난히 추웠던 어느 겨울날, 한 재활센터를 방문했다가 깨진 유리창을 비닐로 대충 막아놓은 모습을 봤다. 같은 날, 가정폭력 피해자 센터 담당자와 통화를 하다가 숙소에 있는 히터가 고장 나서 아이들이 감기에 걸릴까 걱정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그들의 추위가 느껴져 마음까지 무겁고 춥던 날, 아파트 문을 열고 따뜻한 내 집으로 들어서는데 뜬금없이 그 옛날의 운동화가 떠올랐다. 지금 내 앞에 누구라도 비싼 운동화를 들고와 자랑한다면 대뜸 “그 돈으로 차라리 유리창을 고쳐줘라” “히터를 고쳐서 아이들이 따뜻하게 잘 수 있게 좀 해줘라”라며 답답함을 토로할 것 같았다.
이제는 안다. 문제는 운동화가 아니었다. 뭔가 불공평해 보이는 세상, 뭐라도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던 어느 날, 그저 답답하고 무기력해서 튀어나온 푸념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조금씩 마흔의 아버지를 이해하며 마흔 즈음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는 어느 새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셨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요즘 아버지는 종종 “며느리를 보고 있으면, 미국에 있는 큰 딸이 보고 싶다”고 하신단다. 조금 더 자주 찾아뵙고 못 다한 말들을 전해야겠다. 가능하면 아버지께 직접 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더 자주 말이다.
“아버지, 전 지금 당신의 시간을 살아갑니다. 올해는 그 시절의 아버지 마음을 조금 더 알아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늘 못 다한 말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저도 아버지가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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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희 시더스 사이나이 암센터 수석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