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민주주의와 경제적 이익 맞바꾸기의 위험

2024-05-22 (수)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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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선전할 때 그에 따른 부수적 경제 혜택을 광고하는 것은 초콜릿을 판매할 때 그 안에 함유된 항산화성분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초콜릿의 항산화성분은 ‘기분좋은 부작용’이다. 하지만 그건 그리 중요치 않다. 모든 정치 시스템의 ‘고디바’인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바람직스럽다.

하지만 일부 거대 기업들에게 이같은 사실은 그리 확연치 않다. 최근 금융업자들과 석유재벌들은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이 감세와 규제해제 등 단기적인 경제적 이득을 가져올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성급히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공공연한 독재자를 다시 권좌에 올릴 경우 그들이 감내해야 할 장기적 경제손실도 고려해야 한다.

얼마 전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맥케인 인스티튜트에서 민주주의와 경제의 긍정적 상관관계를 주제로 강연했다. 마찬가지로, 브루킹스 인스티튜트의 수석 펠로우인 바네사 윌리엄슨도 지난달 민주주의의 퇴보에 수반되는 경제적 손실을 경고하고, 재계가 민주주의 체제의 방파제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옐런과 윌리엄슨은 모두 민주적 제도와 경제적 고성장 사이에 느슨한 연결 고리가 존재한다는 연구결과를 인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민주주의는 다른 정치 제도에 비해 경제 번영에 불가결한 요소들을 개선하고 유지하는데 능하다. 법치주의 유지, 재산권 보호, 공공재(교육, 공중보건, 기반시설) 공급은 물론 정책결정권자들이 (그들의 친구뿐 아니라) 시민 모두에게 책임을 지게끔 만드는 투명하고 공정한 시스템과 폭력이 아닌 절충을 통한 분쟁 해결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미 귀에 못이 박힐 만큼 자주 들은 이야기겠지만 폭력은 비즈니스에 좋지 않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는 단순한 감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정치체제와 상관없이 상대방이 약속한 물건을 전달하지 않을 경우 이에 대해 책임을 묻는 제도적 보장이 없다면 누가 사적인 거래를 하겠는가? 국가가 아무런 명분 없이 임의로 사유자산을 수용할 수 있다면 어떤 회사가 투자를 하려 하겠는가?

이와 관련한 옐런의 딱 부러지는 설명을 들어보자. “법치주의는 매일 수천 건의 경제관련 결정을 지원한다. 예컨대 내 집 마련 결정이 가능한 것은 법원이 집문서의 법적효력을 확증해주기 때문이고, 사업 확장은 담당관리에게 주는 뇌물의 액수가 아니라 개인의 근면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경쟁하기에 가능하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러시아나 중국 등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종종 흉내까지 내려드는 독재자의 국가보다 미국이 사업하기에 좋은 곳으로 꼽힌다. (분명히 해두지만, 옐런은 트럼프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지 않았다. 해치법에 따라 정부 부처의 장관은 정치 공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 필요조차 없다. 민주주의의 중요성에 관한 다소 진부한 발언이 대통령 후보의 서브트윗으로 읽힐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혐의’를 적시한 엄중한 기소장일 터이다.)

만약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한 기업세 인상 제안을 받아든 기업 지도자에게 민주주의 시스템이 제공하는 경제혜택은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다. 반면 트럼프는 구체적이고 구미 당기는 거래안을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 기업인들과 흥정을 벌인다. 예를 들어, 최근 마라라고의 만찬에 참석한 석유회사 총수들에게 트럼프는 초대형 감세와 환경규제 해제를 선거 기부금과 맞바꿀 거래조건으로 제시했다. 트럼프는 그가 내놓은 제안의 경제적 가치는 자신이 기부를 요청한 10억 달러를 웃돈다며 “수지맞는 거래”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3류 국가로 추락하지 않은 채 트럼프의 1차 집권기를 버텨냈으니 설사 그가 재집권에 성공한다 해도 크게 겁먹을 필요가 없는 듯 보일지 모른다. 물론 1차 집권기에도 트럼프는 공권력을 무기삼아 친구들에겐 상을 주고 적에게는 벌을 주었다. 눈엣 가시 같은 기업을 근거 없는 담합방지법 위반으로 엮어 압박하거나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자신에게 비판적인 방송사를 향해 라이선스를 취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가 하면 법무부를 움직여 정적을 겨냥한 표적수사를 시도하려 했다. 반대로 아군에겐 정부 납품계약 등의 특혜가 주어졌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원하던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때는 이른바 ‘방 안의 어른들’이 반대 목소리를 내며 적극적으로 저지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트럼프의 ‘거래 스타일’은 지난 2021년 1월6일에 발생한 MAGA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사건 이후 한동안 전 대통령과 거리를 두었던 억만장자 공화당 기부자들이 다시 그를 위해 기금모금 행사를 주최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뉴욕타임스의 매기 헤이버만 기자는 “2016년에도 트럼프에 대한 유사한 경고가 나왔다”며 “하지만 아직도 다수의 기업총수들은 특혜를 주고받는데 능한 그를 함께 일할 만한 상대로 간주한다”고 설명했다. 제 아무리 트럼프라 한들 권력남용을 억제하고 견제하는 장치가 내장된 민주주의의 기본 틀마저 깨버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업인들은 그들이 선호하는 악마와의 거래를 선택한다.


그야말로 순진하기 그지없는 발상이다. 트럼프는 밥 먹듯 약속을 뒤집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은행은 물론 영세 계약업체, 정치적 동지와 그를 가까운 친구로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그의 말 바꾸기와 약속 파기로 피해를 입었다. 자신에게 득이 된다고 생각하면 서슴없이 인간관계마저 파쇄하고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아무 거리낌 없이 거래 상대를 협박한다.

그의 치하에서 기업 지도자들이 말 많고 탈 많은 감세혜택을 누릴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준 것 이상으로 걷어 들인다. 게다가 ‘어른들’이 모두 떠난 상황이라 그의 ‘부당거래’를 막기 힘들다. 그렇다면 감세혜택을 누린 기업인들도 결국 피해자의 대열에 서게 되지 않을까?

트럼프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싼 값에 매물로 나왔다고 광고하고, 러시아의 거부를 선망하는 일부 기업인들은 ‘민주주의 바겐세일’ 아이디어를 간접적으로 후원한다. 이런 거래에 참여하기 위해 러시아나 사우디아라비아는 얼마를 지불해야할까? 베이징과 연계된 소셜 미디어 틱톡의 투자가는 트럼프의 마음을 바꾸는데 얼마를 지불했을까? (틱톡을 바라보는 트럼프의 시각은 최근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미국 기업인들과 초대형 기부자들보다 더 많은 돈을 뿌리는 외국의 경쟁자가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미국의 몇몇 재계 거물들은 민주주의를 금전적 이득과 맞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그들은 민주주의와 경제적 혜택 모두를 잃을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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