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온 신혼 부부를 만났다. 34살 동갑인 장순철, 김은경씨. 이들은 4,300킬로미터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을 걸으며 지금 두 달째 신혼여행 중이다. 지난달 멕시코 국경의 캄포를 출발해 캐나다 국경을 향해 걷고 있다. 산행 중에 잠시 들른 필랜에서 만난 이들에게서 벌써 PCT 백 패커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주말 산행 중에 가끔 마주치는 PCT 종주자들의 공통점은 옷은 누추하고, 얼굴은 검게 탔으나 눈빛과 얼굴이 유난히 맑다는 것이다.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잠시 마을로 빠져나와 월마트에서 장을 본 후, 빨래를 해 널고, 모처럼 뜨거운 물로 샤워도 한 이들은 울릉도 나리 분지 가는 길에 ‘대피소울릉’이라는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귀촌 커플. 지난 11월 결혼하고, 6개월 일정의 PCT를 신혼 여행지로 잡았다. 이들이 처음 만난 것도 백두대간의 소백산이었다. 부부는 야생의 자연을 걸으며 미국의 산행 문화도 경험해 보고 싶었다고 한다. 아웃도어의 역사가 길지 않은 한국에서는 지금 여러 시행착오가 벌어지고 있다. 앞선 하이킹 문화를 체험한 후 이를 전파하고 정착시키고 싶은 꿈도 이들의 PCT종주 결심을 부추겼다.
이들이 경험한 장기 하이커들에 대한 주민들의 따스한 격려와 배려, 친절은 감동적이었다고 한다. ‘하이커 할인’을 제공하는 업소가 많았다.
한국서 PCT 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렵사리 인터넷으로 종주 퍼밋을 따 낸다 해도 비자부터 문제다. 3개월 무비자로는 PCT완주가 불가능하다. 미 대사관의 비자 담당자가 PCT를 다 아는 것이 아니다. 공항 입국은 또 다른 시험대. LA공항에서 입국 심사관이 묵을 숙소를 묻자 ‘길(road)에서 잘 것’이라고 대답했다가 귀국 조치된 사람도 있다. ‘산길(trail)’이라고 했다면 좀 나았을까? 노숙자 때문에 난리인데 대놓고 노숙하겠다는 여행객의 입국을 허용하겠는가? 이런 여행에 무슨 여섯 달이나 걸리냐며 체류기간을 석 달밖에 주지 않아 산행 중에 출국했다가 재입국한 사례도 있다고 이들은 전한다.
식량 조달이 제일 걱정이었다. 어떤 식품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한국서 대용량 라면 수프와 불닭 소스만 잔뜩 가지고 왔다. 아무 라면이나 사서 수프는 버리고, 오뚜기수프로 끊여 먹고 있다. 여기 오트밀과 땅콩 버터 등을 더한다. 식량은 닷새 한 번 꼴로 보충하지만, 열흘 가까이 씻지 못한 때도 있다.
PCT는 둘이 나서도 혼자 가고, 혼자 걸어도 여럿이 함께 가는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해낼 수 없다. 일행이 있다고 꼭 같이 가는 것도 아니다. 걸음이 느리면 먼저 출발하고, 나중에 만난다. 가이드는 스마트폰 앱(FarOut)이 훌륭하다. 등산로 안내는 물론, 앞서 간 하이커들이 남긴 긴요한 정보가 커뮤니티에 올라와 공유된다. 트레일 매직, 트레일 앤젤로 불리는 자원봉사도 있다. 부부는 지난 한 달간 벌써 10번 이상 이 도움을 받았다. 등산로에 식품, 음료, 연료 등이 놓여 있는가 하면, 차편을 제공해 장을 보거나 잠시 쉴 수 있게 해 준다. 이런 도움이 PCT 종주를 가능하게 한다.
한국서 오면 고소 적응도 문제다. 이들은 3,200미터가 넘는 남가주 제2봉 샌하신토 인근에서 사흘간 눈밭을 헤매며 미국 산의 고소를 처음 경험했다. 다리 밑은 최악의 잠자리였다. 프리웨이 밑에 텐트를 쳤다가 차 소리 때문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쉬운 구간이었다. 시에라 산맥에 들어서면 쌓인 눈 때문에 운행이 불가능할 수 있다. 이 구간은 건너 뛰었다가 눈이 녹은 뒤 도로 내려와 걸어야 할 수도 있다. 종종 있는 일이다. 안전 문제 등 변수는 곳곳에 숨어 있다.
이들은 ‘대피소울릉’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면서 산행을 계속하고 있다. 풋풋한 젊음의 도전이 싱그럽다.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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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