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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장벽’ 마주한 대기업, 협력사까지 지원한다

2024-05-08 (수) 이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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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국 ESG 공시기준에 ‘스코프3’ 담겨 사활

▶ EU·호주 등 배출량 공시 의무화
▶탄소 관리가 수출 경쟁력에 영향
▶LG전자·오비맥주 등 협력사 지원
▶국내 기업 탄소 배출 70% 이상 ‘스코프3’서 나와 감축 쉽지 않아

세계 각국의 기후 규제가 깐깐해지면서 대기업들이 협력사 탄소배출 감축에 사활을 걸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달 중순 협력사가 쓰는 공기압축기를 고효율 시설로 바꿔 탄소배출 감축을 돕는다고 밝혔다.

설비 한 대를 바꾸면 연간 탄소배출량을 30~60톤 줄일 수 있는데 HD한국조선해양은 최대 협력사 1,000곳의 설비를 바꿀 계획이다.

오비맥주도 2월부터 협력사의 탄소배출량 감축 로드맵 설계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현대차·기아, SK하이닉스와 SK이노베이션 등 주요 수출 기업들은 일찌감치 1차 협력사를 대상으로 탄소감축 상생 프로젝트를 시행 중이다.


대기업들이 협력사의 탄소배출량까지 신경 쓰게 된 건 탄소 관리가 실질적 무역장벽, 나아가 기업 경쟁력에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됐기 때문이다. 당장 국내 사정만 봐도 그렇다. 금융위원회가 올해 3분기(7~9월)까지 국내 상장사에 적용할 지속가능성(ESG) 공시기준을 마련해 2026년 도입한다고 밝혔는데 공시 항목에 협력사 등 공급망과 기업경영에 드는 탄소 총외부배출량(scope3·스코프3)을 넣느냐를 두고 산업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지난달 30일 한국회계기준원이 마련한 초안에 스코프3 공시 기준이 빠져 정부의 고민이 더 깊어졌다.

금융위가 한국형 ESG 공시 기준에 스코프3를 최종 제외하더라도 수출 기업에는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①주요국들이 ESG 공시 기준에 스코프3를 담아서 해외 사업장이 있는 기업들이 직접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유럽연합(EU)을 비롯해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호주·브라질·영국 등은 이르면 2025년부터 스코프3 배출량의 공시 의무화를 선언했다. 중국도 2026년부터 500대 기업이 스코프3 배출량을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ESG 공시 강화 방안을 최근 내놓았다. 최근 일본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SSBJ)가 공개한 ESG 공시 기준 초안에도 스코프3가 포함됐다.

②해외 자회사가 없더라도 수출 기업에는 타격을 준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대표적으로 EU 역내로 수출하는 기업은 2026년부터 협력사 등 공급망까지 탄소배출량을 신고해 자국에서 덜 낸 탄소세를 EU에 내야 한다.

③’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려면 스코프3 관리가 필수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30년까지 스코프3 배출량을 절반으로, 델테크놀로지스는 45% 줄인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했다. 인텔은 2050년 스코프3 배출량 제로를 선언한 상태다.

국내 주요 기업 탄소배출량의 70% 이상이 스코프3에서 나오는 현실에서, 기업 노력만으로 스코프3 감축이 쉽지 않은 만큼 공공 지원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온다. 2023년 처음 스코프3 배출량을 공시한 삼성전자의 경우 직접배출(scope1·스코프1)과 전력 등 간접배출(scope2·스코프2)을 합친 탄소량이 1만9,892킬로톤(kt)인 데 반해 스코프3는 여섯 배가 넘는 12만4,715kt에 달했다.

재계 관계자는 “사실상 글로벌 ESG 공시기준은 스코프3 정보를 요구한다”며 “각 기업은 사업 연관성, 배출 규모와 감축 가능성 등을 따져 협력사 탄소배출량 감축에 대비하고 공공도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인력을 지원하는 등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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