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어 재단 ‘반도체 전쟁’ 포럼
▶ 기술 강국 패권 쥐는 시대
▶미 대선 후 대중규제 강화
▶수출 통제 조치 동참 필요
미중 무역 갈등과 인공지능(AI)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모습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세계 각국이 천문학적 보조금을 투입하고 인재 확보에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반도체 강국' 한국의 경쟁력도 위협받는 상황이다.
3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민간 싱크탱크 니어재단의 포럼 '세계 반도체 전쟁, 한국은 승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에 참여한 외교·산업 전문가들은 "(지금은) 첨단 과학기술을 가진 나라가 국제 사회의 주도권을 쥐는 기정학(技政學)의 시대"라며 각국의 반도체 경쟁 속에는 위협과 기회 요인이 함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특히 미국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이들은 미국 정부가 1980년대 일본이 세계 반도체 제조업의 중심지가 됐을 때나 2000년대 초 미국 내에서 반도체 제조 기술 경쟁력을 우려했을 때까지도 눈에 띄는 움직임이 없었다고 분석했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그러나 지금은 강력한 수출 통제·동맹 전략을 펼치고 있다며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 첨단 산업의 중심이 반도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배영자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구체적으로 "2017년 미국의 대중 전략이 파트너 관계에서 도전자 견제로 바뀌면서 미국의 반도체 전략이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기정학 시대의 특징은 "기술 패권이 (각 산업과 국가에) 쌍방향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권 교수는 "AI가 서버 설계를 잘해도 하드웨어에서 구현할 수 있어야 하고 AI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칩 설계를 못하는 시대"라며 "각국의 전력 정책도 반도체 제조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특징을 감안해 K반도체 전략은 "정치적, 경제적, 기술적, 산업적 관점에서 다각도로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참석자들이 내놓은 처방은 다양했다. 김혁중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북미유럽팀 부연구위원은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 속에서 절차적 지연 장치를 마련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대중 반도체 규제는 강화될 것"이라며 "(우리 기업이) 미국 요구를 거절할 수 없겠지만 (국내) 법을 개정해서라도 수출 통제를 까다롭게 하고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종완 반도체산업협회 전략연구센터장은 국내 반도체 산업의 약한 고리를 튼튼하게 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한국 반도체 기업이 전 세계 반도체 매출의 9.7%를 차지하지만 시가총액은 6.6%에 그쳤다며 "우리 반도체 산업은 생각만큼 강하지 않고 약점이 많다"고 평가했다. 이어 소재·부품·장비가 특히 취약하다며 연구개발(R&D)과 협력 네트워크 구축 등을 위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권석준 교수는 정부가 발표한 중부권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2040년까지 계획대로 추진하려면 인력과 전력, 용수 3대 문제 해결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그는 "(반도체 클러스터가) 계획대로 조성된다면 앞으로 20~30년 반도체 생산 경쟁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완공 시점에 순수 한국인만으로 반도체 공장이 돌아갈 수 없는 만큼 숙련된 외국인 인력이 훈련받고 합법적으로 일하는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탄소 중립을 지키면서 전력과 용수를 끌어오는 방법도 과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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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