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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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온돌방 문화

2024-03-18 (월) 박치우/남성복식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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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가끔 가면 친척들이 맛있는 것 먹여준다고 먼 곳까지 데리고 간다. 그리고 우리가 떠나기전에는 시골길 이었지만 나날이 발전한 고층 아파트단지를 가리키며 ‘이제 한국도 많이 변했다’고 한다. 가만히 듣고 있기만 하기가 그래서 ‘글쎄, 그러네.‘ 한다.

그래서 미국 아파트 이야기를 하려 하는데 옆에 앉은 아내가 내 옆구리를 꼬집는다. ’한국에 사는 사람이 한국이 발전되어 좋다는 얘기를 가만히 듣고 맛있는 것 얻어 먹고 오면 돼지. “ 하는 뜻 같았다.

우리 조상들은 오래 전부터 슬기로운 온돌 문화를 갖고 살아왔다. 지금도 옛 헌집의 온돌방을 뜯어 보면 아랫목은 아궁이가 있는 부엌쪽이며 웃목쪽으로 연기가 빠지는 돌고래를 고랫돌이 얹혀져 장판이 되도록 했다.


윗목 쪽에는 사람 무릎 깊이 만큼 낮게 하고 굴뚝을 밖에 세운다. 방바닥은 고랫돌 위에 찰흙을 얇게 바르고 마른 후에 초벌을 바르고 그위에 장판지를 바르고 콩을 불려 치자와 같이 갈아 장판지 위에 노릇하게 바르는 것을 콩댐이라고 했다.

어느 방문이나 문살에나 창호지가 발라져 있다. 아무리 추운 날에도 찬바람이 들어오지 않고 통풍이 된다. 이런 온돌방은 아궁이에 불을 떼면 방바닥이 따듯해진다.

이런 슬기로운 조선인의 온돌방 문화를 일정때(1940) 일본인이 책도 썼는데 당시 조선총독부에 불려간 작가에게 “오마에와 조센징까 닛뽄징까” )너는 조선인이냐 일본인이냐) 야단치며 책과 함께 본국으로 쫒겨난 실화도 있다.

그시절 어머니는 새벽 3시면 일어나 부엌에 가서는 가마솥에 물을 데우고 밥솥에 불을 때었다. 아직 잠자리에 있는 우리는 방바닥이 따듯해 오는 것이 마치 엄마 품에 안기는 따듯함을 느꼈다.

인간미가 있던 그런 우리 조국이 아파트 강산으로 변해 버렸다. 차를 타고 멀리 지나가다 보면 그 아파트 건물에 큰 글자로 한국의 큰 기업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자기들이 지었다는 과시이기도 하다.

내가 태어난 한반도는 우리가 어디서 살던지 나의 나라이다. 대기업들의 상업 목적으로 상자같은 집을 높은 공중에 지어 많은 후세들의 장래 건강까지 챙기지 못하는 것같다.
중심 도시에는 오피스 빌딩과 더불어 아파드가 필수적인 것이지만 지방에까지 더구나 세계적인 유산 경주의 불국사 근처까지 아파트 건물이 위세당당히 서있다. 어느 정권때 그런 지역에 아파트 건축 허가를 내어 주었는지 원망스럽다.

산골마을에 온돌방이 있는 집, 그리고 흙에 발을 대고 자연 속에 살던 우리 조상의 전통문화 생활로 되돌아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장수의 비결은 자연스런 생활을 하는데 있다.

<박치우/남성복식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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