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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부선로

2024-03-14 (목) 최형욱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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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의 연례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는 저출생 문제 극복을 위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훙밍지 정협 위원은 중국의 의무교육 학제를 현행 12년에서 9년으로 단축하자고 주장했다. 또 다른 정협 위원인 간화톈 쓰촨대 화시병원 교수는 법적으로 결혼 가능한 나이를 남녀 모두 18세로 낮추자고 제안했다. 지금은 남성 22세, 여성 20세이다. 15세 이후 취업하고 20대 이전에 결혼·출산을 하도록 허용하자는 것이다. 퇴직 연령을 65세로 연장하는 것도 이번 양회의 논의 주제였다.

현재 중국은 ‘미부선로(未富先老·부자도 되기 전에 늙는다)’ 가속화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신조어는 ‘미부선호(未富先豪·부자도 되기 전에 잘난 척한다)’라는 사자성어에서 유래했다. 2021년 3월에는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정부기관 가운데 처음으로 ‘미부선로’ 문제를 제기했다. 선진국들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5만 달러였을 때 고령사회에 들어간 반면 중국은 2021년 1만2,500달러일 때 너무 빨리 진입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저출생·고령화 문제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1.0명으로 한국에 이어 세계 2번째로 낮다. 중국 정부는 ‘인구 붕괴’를 막기 위해 양육 보조금 지원, 복권 지급 등 다양한 출산 장려책을 내놓고 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취업난과 집값 상승, 막대한 양육비 등 경제적 요인들과 ‘1자녀 정책’ 추진 때 ‘소황제’로 자라온 20~30대의 결혼·출산 기피 문화 등이 겹쳤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이번 전인대에서 올해 10대 중점 과제로 산업 현대화, 과학 교육 발전, 내수 확대, 구조 개혁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생산 가능 인구가 감소하면서 가계 소비 둔화, 생산성 하락, 노인 부양 부담 등에 시달리고 첨단산업으로의 전환에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피크 차이나(중국 정점론)’의 근본 원인은 인구 감소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이 ‘중진국 함정’에 빠질 가능성에 대비하면서 중국보다 더 심각한 한국의 저출생 문제 해결에 총력전을 기울어야 할 때다.

<최형욱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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