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언론의 역할과 신뢰도

2024-03-14 (목) 박옥춘 전 미 교육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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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정부의 제 4부라고 일컫는다. 행정부, 의회, 사법부와 같이 헌법에 의해 수립된 정부의 공식 기구는 아니지만 언론이 국가 통치와 운영을 위해 행사하는 역할과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시사해주는 말이다.

펜실베니아 대학과 남캘리포니아 대학(USC)에 언론통신대학을 설립해 준 월터 아넨버그는 대중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고 수정헌법 제 1조에 의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는 언론의 파워는 정부 3부에 못지않게 크다고 했다. 반면 언론의 파워가 잘못 사용될 때는 사회와 국가발전에 그만큼 큰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언론은 국가의 정책과 그의 집행, 그리고 각종 단체들의 활동과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 등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뉴스보도의 역할을 담당한다. 동시에 언론은 정부, 기업, 교육, 문화, 종교 등 각종 단체들과 주요 인물들의 활동을 감시하고 그들의 업적이나 잘못을 대중에게 알리는 사회 감시와 고발의 역할을 수행한다. 또 언론은 해설이나 논설을 통해서 중요한 국가적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돕는 교육과 여론주도의 역할을 한다.


이런 언론의 역할은 두말할 필요 없이 국민들의 복지와 행복을 최상의 목표로 추구하는 민주국가의 건전한 유지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동시에 이런 언론의 역할은 묵시적인 사회계약에 의해서 언론이 국가사회로부터 부여받은 의무로 성실히 수행해야 될 책임이다.

언론도 정부나 다른 사회조직과 마찬가지로 수행해야 될 의무와 책임을 소홀히 하고 주어진 파워를 잘못 사용한다면 대중들의 신뢰를 잃게 된다. 대중으로부터의 신뢰상실은 독자나 시청자의 감소를 초래하여 언론의 영향력을 감소시킨다. 또 사업체로서의 재정 손실로 이어진다.

불행히도 신문, 방송, 잡지, SNS와 각종 웹사이트를 포함한 언론매체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지고 있다. 갤럽조사에 의하면 신문 방송 같은 뉴스매체들의 보도를 ‘아주 많이(great deal)’ 혹은 ‘상당히(fair amount)’ 신뢰한다는 미국인이 1976년 72%에서 계속 떨어져 2023년에는 32%를 기록했다. 뉴스매체의 보도를 ‘전혀 믿지 않는다’는 비율도 1976년 4%에서 2023년 39%로 증가했다.

언론인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뢰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2년 갤럽이 조사한 전문직업인들의 정직성과 윤리기준의 순위를 보면 언론인들은 텔레마케터, 자동차 세일즈맨, 의회 의원, 광고인보다는 높지만 18개의 직종에서 13번째로 낮았다. 언론이 보수와 진보 간의 싸움에서 특정 이념그룹과 정당의 전위대로 전락되면서 미국인들의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급속히 하락한 것이다. 1930년대 경제공항 극복을 위해 루스벨트 대통령이 제창한 뉴딜정책을 둘러싸고 표면으로 떠오른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오바마 정부가 출범했던 2009년 이래 급격히 심화되어왔다. 지금처럼 미국인들을 두개의 이념그룹으로 깊게 갈라놓는데 공헌한 언론의 책임은 정치인들 못지않게 크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언론의 편파적인 방어와 공격의 수위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언론매체의 보도를 분석하는 올사이드(Allsides)에 의하면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US 투데이, ABC, CBS, NBC 뉴스, MSBNC, CNN, NPR, AP, Bloomberg, 야후 뉴스, 폴리티코, 타임, 더네이션, 더가디언, 더아틀랜틱, 악시오스, 허프포스트 등은 진보나 진보 성향이고, 뉴욕포스트, 워싱턴타임스, 워싱턴이그재미너, Fox 뉴스, 뉴스맥스, 브리트바트, 내셔널리뷰, 월스트릿저널 오피니온 등은 보수나 보수성향이다.

중도적인 뉴스매체로는 월스트릿저널 뉴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로이터, BBC, 뉴스위크, 포브스, 더힐 등으로 편파적인 언론매체 수에 비해 훨씬 적다.

재미동포들을 위한 한국 언론들도 이런 이념적 정치적 싸움에서 초월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 언론들은 미 주류 언론들의 보도와 해설을 채택하거나 인용할 때 경영자나 편집진의 이념적 정치적 편견이 반영되지 않도록 노력해주길 바란다.

또 이념이나 정치적 기사를 보도할 때는 기사의 제목, 활자의 크기와 위치 등을 적절하고 공정하게 선택해주길 부탁한다. 그것이 다양한 그룹의 독자나 시청자를 포용하고 동포사회를 이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분열시키지 않는 길일 것이다. 또 그것이 언론의 역할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수행하는 길이고 독자나 시청자를 잃지 않는 길이며 사업체로서도 유익한 길일 것이다.

독자나 시청자들도 언론매체들의 해설기사나 논설에 접할 때는 그 출처도 살펴보고 내용 속에 내포된 작성자나 편집자의 의도도 유추해보면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것이 편견 없는 언론을 보기 어려운 세상에서 편견 없이 세상을 이해하는 길일 것이다.

<박옥춘 전 미 교육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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