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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 한인들 적절한 치료•보상 받을수 있도록 노력”

2024-02-29 (목)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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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형 대표

“뉴저지 한인들 적절한 치료•보상 받을수 있도록 노력”

김도형 대표(사진)

김도형 대표는 1999년부터 5만 명이상의 한인환자를 치료한 물리치료사 경력과 20년간 쌓아온 통증병원 CEO로서의 행정 조정 및 관리 운영 노하우는 아무도 따를 자가 없다. 그는 뉴저지 병원을 오픈하면서 결심한 것이 있다.

” 가장 먼저 교통사고 등으로 몸을 다친 환자를 완전히 낫게 하는 것이다. 환자 중에 병원 기록이 없어서 보상을 못 받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 사고가 나면 무조건 병원으로 와야 한다. 사고난 다음 바로 치료를 해야 회복도 빠르다. 적절한 치료와 검사, 보상도 잘 받을 수 있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김도형 대표는 98년 연세대 재활학과 졸업후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도미했다. 99년 3월 퀸즈 포레스트힐 레녹스힐 병원에서 일한 다음 2000년 5월 염종원 대표와 염카이로 통증병원을 공동운영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인사회에 몇 군데 통증병원은 있었으나 통증치료 & 물리치료가 전문적으로 본격 조인한 것은 처음이었다.
병원이 자리를 잡자 교통사고 전문변호사들이 뉴저지에도 개원해달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뉴욕과 뉴저지는 의료 시스템이 다르다. 환자도 플러싱은 중국인을 비롯 타인종과 한인들이 50: 50이다. 뉴저지는 아직 한인 환자들이 주로 온다. “고 한다.
김대표가 물리치료사가 된 것은 어머니의 권유에서다.

”학창시절 꿈은 아버지처럼 유명 건축엔지니어가 되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재활학과를 권했다. 꿈은 달라졌지만 막상 해보니 재미있었다. 그런데 졸업하던 해인 98년 한국의 IMF가 미국에 오게 했다. 한국에 돈이 없어서 미국에서 엑스레이 필름을 못사올 지경이었다. 한국의료시장이 열악해지면서 많은 일자리들이 사라졌다. 그래서 미국에 가보자 했다.“

김도형 대표는 미국에 와서 조지워싱턴 대학교에서 비즈니스를 전공한 후 자신의 비즈니스를 키우는 틈틈이 쉬지 않고 한인사회 봉사활동을 해왔다. 뉴욕가정상담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6년 무지개의 집 직원과 자매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을 찾으면서였다.

수년간 이사로 봉사하면서 무지개의 집(이사장 방은숙)과 가정상담소가 뉴욕한인사회 비영리기관 최초로 합병하는데 많은 노력을 했다. 2016년 5월 열린 제27회 연례갈라 준비위원장으로써 본인 1만달러 포함 뉴욕 한인단체 최초로 100만달러를 넘기는 많은 후원을 이끌어 냈다.

또한 34대 뉴욕한인회 수석부회장, 18,19기 민주평통뉴욕협의회 간사, 20기 민주평통 미주지역회의 간사로 활동했다. 2021년 12월 시민참여센터 신임이사장으로 선출되어 지금까지 봉사중이다.

그는 ”평소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꾸준한 운동을 병행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며 ”물리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즉각 찾아오고 또다시 PMC를 찾아올 수 있게 하고 싶다.“는 바람을 말한다. 김대표의 취미는 골프와 여행이다. 두 번의 홀인원을 기록한 바 있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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