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대표팀의 감독에 최초로 외국인을 영입한 것은 1994년 7월이다. 러시아 출신 아나톨리 비쇼베츠다. 1994-1995년 국가 대표팀 기술 고문을 역임한 뒤 올림픽 대표팀을 지휘했다. 그러나 7개월의 초 단기로 끝났다.
이후 ‘죽음의 성배’로 통한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은 청소년 대표팀의 멕시코 4강 신화를 이룬 박종환을 비롯해 주로 국가대표 슈퍼스타 출신들이 맡았다. 차범근, 허정무 감독 등이 지휘봉을 잡았다. 차범근 감독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E조 예선에서 멕시코에 1-3, 네덜란드에 0-5로 패한 뒤 현지에서 경질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대한 축구협회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네덜란드 출신 거스 히딩크를 영입했다. 역대 대표팀 외국인에는 네덜란드 출신이 가장 많다. 히딩크를 시작으로 요하네스 본플레러,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 등 4명에 이른다. 네덜란드 출신 감독은 한국 외에도 꽤 있다. 배경이 있다.
1970년대 네덜란드는 축구의 새로운 전술을 창안했다. 이른바 ‘토털 풋볼’이다. 한마디로 전방위 축구다. 포지션과 지정된 위치에 국한되지 않고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로 모두 뛸 수 있는 전술이다. 1970년대 리누스 미겔스 감독이 네덜란드 명문 아약스와 국가 대표팀에서 토털 풋볼을 시도했다.
일부 축구 역사가들은 1930년대 오스트리아, 1950년대 헝가리 팀이 토털 풋볼과 비슷한 경기를 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네덜란드의 토털 풋볼은 1974년 서독 월드컵,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꽃을 피우며 각국에서 이 전술을 따라갔다. 그 중심에 있었던 선수가 요한 크루이프(2016년 사망)다. 다만,아쉬웠던 점은 토털 풋볼의 네덜란드가 월드컵 우승에 실패하고 2개 대회에서 잇달아 준우승에 머무른 점이다.
토털 풋볼이 시작되면서 당연히 우수한 지도자도 배출됐다. 현역 시절 별 볼 일
없었던 히딩크는 지도자로 성공했고, 한국 대표팀을 4 강으로 이끈 명 감독이 됐다.
비쇼비치를 포함해 한국 대표팀을 거쳐 간 외국인 감독은 아시안컵 이후 경질된 위르겐 클린스만을 포함해 총 9명이다.이 가운데 월드컵 16강 이상으로 이끈 감독은 히딩크와 포르투갈 출신 파울루 벤투 2명이다.
클린스만(59)은 역대 외국인 감독으로는 경력이 가장 화려하다. 슈퍼스타 출신이다. 분데스리가명문 바이에른 뮨헨과 12년 동안 독일 국가 대표팀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다. 프로 리그에서 514경기에 출장해 232골을 터뜨렸다. 대표팀에서도 47골을 작성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한국을 상대로 두 골을 터뜨려 16강을 좌절시킨 주인공이다.
선수로 큰 이름을 날린 클린스만은 지도자로 변신해 독일 대표팀과 바이에른 뮨헨 감독을 역임했다.독일과 미국 대표팀 감독으로서는 성공했다. 2006년 자국에서 벌어진 월드컵에서 독일은 조 예선 3승, 16강 에서 스웨덴 2-0, 8강 아르헨티나와 1-1에서 승부차기 승, 4강에서 우승을 거둔 이탈리아에 2-0으로 패하고 3,4 위전에서 포르투갈을 3-1로 꺾었다. 당시 영웅 대접을 받았다. 슈퍼스타 출신 감독으로도 성공한 케이스였다.
독일 대표팀에서 사임한 뒤 미국 감독 영입 제안을 여러 차례 받았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이중 국적자 이고 가족들이 LA 인근에서 살아 미국이 탐낼 만했다. 외모가 준수한 편인 클린스만의 부인은 중국계 모델 출신이다.
독일 월드컵에서 성공한 클린스만은 2008년 바이에른 뮨헨 감독 자리에 오른다. 첫 프로 클럽 감독이었다. 구단과 마찰을 빚어 한 시즌 반을 지휘한 뒤 경질됐다. 25승9무10패를 기록했다. 바이에른 뮨헨 감독에서 물러난 뒤 잠시 방송 해설자로 활동했다. 2011년 드디어 미국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 5년 동안(2011-2016년) 미국 대표팀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아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엮어냈다. 벨기에에 2-1로 져 8강 진출은 좌절됐다.
하지만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앞둔 북중미 예선에서 멕시코와 코스타리카에 잇달아 패하자 미국 축구협회는 클린스만을 경질했다. 지도자로 하향 길에 접어든 시기다. 이어 2019년 11월 분데스리가 2부 헤르타 감독으로 취임했다. 10경기 3승3무4패를 기록하고 물러났다.전성기가 지난 클린스만의 예전 화려한 경력에 매료된 곳이 현 대한축구협회(회장 정몽규)다.
2023년 2월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호출했다. 역대 최강 멤버로 평가받은 아시안컵에 출전한 대표팀은 요르단과의 준결승에서 유효 슈팅 1개도 기록하지 못하고 0-2로 참패했다. 모든 축구인들은 A매치 사상 최악의 결과라고 비난했다.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란 없다. 요르단전을 앞두고 캡틴 손흥민과 클린스만의 총애를 받는 이강인이 몸싸움을 벌인 게 영국 신문에 폭로 됐다. 전술 부재 외에도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클린스만은 기술 강화 위원회 화상 회의 참석해 요르단전 패인은 손흥민과 이강인에게 돌려 팬들을 더욱 분노케 했다.
국민적 압박을 받은 정몽규 회장은 미국에 있는 클린스만에게 해고 통보를 전했다. 역대 외국인으로 가장 화려한 경력 소유자이면서 가장 불 명예 스럽게 물러나는 감독이 됐다. 물론 잔여 2년 6개월의 연봉은 바이아웃으로 엄청나게 챙긴다.
감독도 전성기가 있다. 흘러간 물은 방아를 돌리지 못한다는 게 스포츠에서도 통한다.
문상열 전문기자 moonsytexas@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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