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대한민국 제2도시의 위용이 눈부셨다
▶ 맛집 투어와 호캉스, 목적 없는 유랑체험
사투리의 본질
동행 중 충청도 사투리를 여행 시작부터 끝까지 고집하시는 분이 계셨다. 처음에는 귀엽다가 열흘이 지나니 들어주는 것도 힘들었다. 사투리를 고집하시는 분들 대부분이 사투리를 못 버리는 것이 아니라 안 버리기 때문인데 자존감이 높아서일까? 아니면 충청도 사투리를 사용해도 사회에서 큰 차별을 안 받기 때문일까? 충청도 사투리를 자랑하듯 하던 분과 달리 경상도나 전라도 사투리를 유창하게 하시는 분이 없었던 것이 상황을 대변한다. 미국에서도 심한 남부 사투리를 사용하는 사람 중에 고위직에 있는 이가 없고 연예계에서도 컨트리 장르뿐이다. 본인 스스로 변방 출신임을 떠벌려서 도움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회는 냉혹하다.
부산의 위용을 대변하는 대교들과 엘시티의 마천루들
우리는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은 항구도시인데 특이하게도 산들이 병풍처럼 쌓여 있어 달동네 천지였다. 부산에서는 등산이 일상생활이며 그래서 부산 남자는 허벅지로 말한다. 대한민국 제2도시의 위용이 눈부셨다. 인구 3백50만, 고성장도시의 표본인 마천루 건물들이 우후죽순 하늘을 찌르고 내가 묵었던 부산 시그니엘 호텔이 그 정점에 솟구쳐 있었다.
한국의 마천루들은 서울(78동), 부산(62동)에 밀집되어 있는데 주상복합 최고급 마천루들은 2010년이후 부산 해운대 지역에 집중 건축되어 보기에 좋았다. 부산은 예부터 일본문화와 전쟁특수 등을 누리며 타 도시들과 차별화되었다. 광안대교, 포스코다리들을 지나가며 두 눈으로 확인한 무역항의 위용은 어마 무시할 정도였다. 점심시간, 가이드분이 부산 최고 복집을 점심식사 장소로 잡았다며 자랑했다. 사실 난 부산도 처음, 복요리도 처음 하는 식사라 사뭇 기대되었다.
초원복집(1992년): 지역주의와 이기주의를 부추겼던 그 현장
식당 건물은 제법 큰 사이즈였고 외관은 마치 독일식 건축물같이 보였다. 2층으로 안내 받아 올라가니 여기저기 각방들이 즐비했다. 의자에 앉으며 “혹시 이 복집, 그 복집 맞아요?” 하고 물었더니 나이든 이모가 싸늘하게 돌아서며 “그 복집 아이다!” 하며 단호하게 대답한다.
옆에서 조용히 국그릇에 얼굴을 파묻고 식사하던 아저씨가 얼굴도 안 들고 혼자 말하듯이 답했다 “그 복집 맞데이, 물 쫌 주소.” 이모는 여러 그릇을 수거해가며 “그 복집 아이다니까!” 하며 바삐 달아난다. 서로 맞데이, 아이다 하며 다투는 이유는 뭘까?
“우리가 남이가”- 김기춘(전 법무부 장관)
1992년 열기속에 치루어졌던 대선은 보수, 진보, 민주, 산업화 등 여러 요소가 집합된 김영삼, 김대중, 정주영 3자 구도속에서 치루어졌다. 그러나 무리수를 둔 정 후보 참모들의 실책으로(도청) 한순간 피해자인 정주영 후보를 날려보내고 언론은 지역감정을 부추겨 김영삼 후보가 당선된다.
9명의 지역 최고 단체장들이 모여 정치공작을 하며 지역감정을 부추겼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보다 더 심한 것은 국민들이 언론 플레이를 수용했다는 사실이다. 이래서 고대 그리스에서도 현재 미국에서도 완전한 민주주의 보다 수정된 공화제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집단주의, 이기주의, 폭민주의다.
독극물에 대한 불안을 감수하고 한 식사는 나에게는 별로였다. 다시 버스에 몸을 실었는데 동행했던 분들 어느 누구도 ‘복집 사건’에 대해 입도 뻥긋 안 했다. 서로 어느 지역 출신일지도 모르는데 괜히 헛소리하다가 책잡히기 싫기 때문이다. 이제 한인 모두 선진 국민이다. 그럴까?
자신이 뱉은 음식을 또다시 찾아가 집어먹는 개
미군 복무 당시 백인들은 흑인 욕하고 흑인들은 백인 욕을 해서 어디에 붙어도 욕먹는 구조에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영남이나 호남이 아닌 사람들 입장에서 그들의 감정 싸움은 망국병과 같다. 나는 서울 사람인데 계속 어느 편에 서야만 하는 부조리가 무척 싫다.
얼마전 서울에서 세계 한인회장님들이 모여 평화 통일을 논하는 행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미국에서 온 회장님들이 같이 택시에 탔다. 세계총회장을 뽑아야 하는 순서가 남아있었는데 남가주 회장님이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안 회장님은 누굴 미나?” “아직 결정을 못했습니다” “그러면 S회장을 밀어줘, 어차피 전라도 사람은 안 되잖아?”
나는 귀를 의심했지만 크게 놀라지도 않았다. 호남사람 없으면 그들 욕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한인들을 대표하는 한인회장들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분단의 역사와 현 대치 상황, 그리고 미국에서 자신들이 감수해야했던 인종차별, 온갖 차별 다 받아본 사람들이 한인들끼리 또 쪼개서 왜 지역차별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오랜 시간 사업하면서 한 번도 그 차별을 안 하려고 노력했었다. 그런데 차별은 한인들이 더 하고 있었다. 쉬쉬하며 뒤에서 흉보고 욕하고 등에 침을 뱉는다. 그러다 필요하면 완전히 맘에 없는 소리를 지껄인다. 문제는 성경에 나오는 개 마냥 자신이 삼켰다가 뱉아 놓은 음식을 되찾아가 먹어대는 모습이다. 그 모습 정말 역겹다. 그러나 나보다 연배인 분들에게 분위기 싹 가시는 소리도 하기 힘들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자 눈치 챘는지 더이상 전라도 언급은 없었다. 조용히 행해지는 지역차별은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는 같은 피인가?
한국 산업현장에서 흘렸던 땀방울과 미국 슬럼에서 장사하며 흘렸던 땀방울은 다른 땀방울일까? 월남 파병군인들이 정글에서 흘렸던 피와 미국에서 강도들에 의해 흘렸던 피가 다른 핏방울일까? 한국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우리 누이들의 피멍들과 미국 세탁소에서 일하며 우리 아낙들의 손에 맺힌 피멍들은 다른 것일까? 산과 강 그리고 바다밖에 없는 나라에서 경쟁과 최고로의 열망은 선택이 아니었다. 오히려 신발끈과 허리띠를 더욱 조아 매야 할지도 모른다. 중국, 일본, 러시아 그 어느 나라도 다시는 대한민국을 강탈 못하게 민족은 단합해야 한다.
이 세상을 돌아다녀보아도 한국만큼 노숙자가 적은 나라는 없다. 사회에 낙오자가 생기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보다 더 불행한 것은 퇴보와 좌절을 사회에서 용인하는 것이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가 서로를 차별하고 가르는 짓이다. 기적은 일어났던 곳에서 다시 일어난다. 한강의 기적을 영산강, 낙동강 할 것 없이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그 기적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역시 계속 열심히 살며 같은 한인들을 차별 안 하며 살 것임을 다짐한다. 조용필은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하며 목놓아 불렀다. 우리 모두 한 형제다.
문의 jahn20@yahoo.com
<
제프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