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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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인의 낙서

2024-02-20 (화) 박석규 은퇴 목사 실버스프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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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을 보내주는 후배 목사가 어제는 요양 시설의 보호를 받고 있는 노인이 남긴 구겨진 낙서라면서 “어느 노인의 낙서장"을 보내왔다.

돈이 있다 위세 부리지 말고, 공부 많이 했다고 잘난 척하지 말고, 건강하다고 자랑치 말고, 뽐내지마소. 다 아-소용 없더이다. 나이들고 병들어 누우니 잘난 자나 못난 자나 배운 자나 못배운 자나 너나 없이 남의 손 빌려 하루 하루 살아가더이다. 그래도 살아있어 남의 손에 끼니를 이어가며 똥 오줌도 남의 손에 맡겨야 하는구려. 당당하던 그 기세 그 모습이 허망하고 허망하구려. 내 형제 내 식구 자식만 최고인양 남을 업신여기지 마시구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식구도 아닌 바로 그 남들이 어쩌면 이토록 고맙게 해주는지…” 읽고나니 숙연해 진다.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이다.

가버린 세월의 아쉬움이 가슴에 가득하다. 돌아보면 젊은 시절엔 한 살이 추가되면 기뻤다. 어른이 되어가는 게 뿌듯하기도 했다.


누가 늙고 싶어 늙고 누가 병들고 싶어 병들었을까. 세월가면 늙어가는 게 당연하고 늙어지면 병이 드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아프다고 마음이 약해 지는 건 치료약이 없단다. 운동을 많이 하라고 충고를 하는데 몸만 돌볼 것이 아이라 마음과 정신을 돌보아야 하겠다. 어떻게 늙어 있을까? 자화상을 들여다 본다. 젊어서는 어떻게 성공하는가, 어떻게하면 출세하는가를 생각해 왔지 어떻게 늙어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못한 부끄러움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가장 성공한 사람은 늙어서 존경을 받는 사람이다.

추하게 손가락질 받으며 늙지 말아야하겠다. 좋은 생각 바른 생각을 가지고 이웃을 돌보며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오래된 현악기에서 깊은 선율이 울려나온다. 주름살과 함께 품위가 갖추어지면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고 빅토르 유고가 오래전에 가르쳐 주었다. 속절 없이 늙어가더라도 목적과 목표를 잃지말고 시대를 견디고 세월을 견디며 영혼의 등대 찾아 가야지…. 마음과 생활 속에 감사와 소망과 사랑의 씨앗을 뿌리면 감사와 소망과 사랑이 피어나게 될 것이다.

누군가가 아프다고 할 때 “약이나 먹어" 하지말고 “어디가 아프니? 많이 아파?"라고 하며 누군가 사랑한다고 할 때 “그래" 라고 하지말고 “나도 너를 사랑해" 라고 말하란다. 누군가가 힘들다고 할 때 “나도 힘들다" 짜증내지 말고 “그래 힘들어, 내 어깨에 기대" 라고 말해주란다.

청춘의 우정보다 황혼의 우정이 아름답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노년생활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재산이나 명예나 권력이 아니라 가족과 친구 이웃과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는 삶인 것이 분명하다. 늙어간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란다. 걱정을 하려면 두 가지만 걱정하라. 지금 아픈가? 안 아픈가? 안아프면 걱정하지 말라. 아프면 두 가지만 걱정하라. 낫을 병인가? 안 낫을 병인가? 낫을 병이면 걱정하지 말란다.

안 낫을 병이면 두 가지만 걱정하라. 죽을 병인가 안 죽을 병인가? 안 죽을 병이면 걱정하지 말라. 죽는 것을 걱정하며 두려워하지 말고 죽음을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란다. 뭐니 뭐니 해도 우리에게 주신 오늘 하루는 축복이요, 최고의 선물이다.

<박석규 은퇴 목사 실버스프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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