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쏘울 푸드가 소고기무국이듯이 그런 마음의 양식을 꼽는다면 단연 ‘Finding My Voice’이다. 번역서는 없어 디즈니 만화영화 식으로 한글 제목을 붙인다면 ‘내 목소리를 찾아서’가 될까.
1992년에 나온 성장소설인데 2021년에 재출간됐다. 작가 마리 명옥 리(Marie Myung-ok Lee)는 청소년 소설(Young Adult)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인 2세 작가들의 선구자다. 범위를 넓혀 아시안 아메리칸 작가들의 큰 언니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시대 배경은 80년대, 미네소타 작은 도시의 고교 졸업반인 한인 2세 주인공 엘렌이 칭칭 비아냥대는 인종차별과 진학 최우선인 부모의 기대라는 부담 아래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성장소설이다. 작가 자신의 자전소설 성격 또한 두드러진다.
2세 작가들이 YA 청소년물에 대거 진입하여 활약하고 있는 현상 자체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다른 어떤 집단보다 정체성에 관한 고민이 클 것이니까. 이 책을 내게 알려준 이는 후배 기자였다. 94년경으로 기억하는데 작가의 워싱턴 DC 북투어를 취재 나갔던 후배가 페이퍼백을 사서 내게 주었다. 아직 킨더가튼도 가지 않았지만 내게 딸이 있는 걸 알고 삼촌의 마음으로 선사한 것이다.
한국에서부터 알던 시드니 셸던과 마이클 크라이튼 말고는 미국 와서 처음 접한 작가였다. 그러니까 첫사랑 같은 거다. 딸애도 챕터 북을 읽을 정도가 된 초등학교에 올라가서 눈빛 반짝이며 읽은 책. 작가의 팬이 된 우리 부녀는 도서관에서 작가의 다음 책들을 찾아 읽었고(‘If It Hadn’t Been For Yoon Jun‘), 인터넷 책방이라는 아마존에 가입해서 처음 산 책 역시 그의 것(‘F is for Fabuloso’)이었다.
잦은 이사에 그의 책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그 첫사랑을 사반세기가 지나서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오디오북으로. 스토리라인이 가물가물 기억은 나지만 완전히 새로 읽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흐른 만큼, 아는 만큼 더 보인다는 그 재미를 누렸다.
1992년판과 2021년판 사이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 우선 표지의 느낌이다. 내가 기억하는 표지는 체조 연습복을 입고 쭈그려 앉은 소녀였다. 지금은 얼굴 표정이 강조되었는데 K팝 가수, K드라마 주인공 느낌이 있다. 짙은 쌍꺼풀에서 K뷰티도 느껴지고. 그렇다고 섭섭하다는 건 아니고, 코리안을 바라보는 일반의 시각이 반영된 걸로 풀이하고자 한다.
저자명 표기도 달라졌다. 초판에서는 작가의 이름이 Marie G.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제는 한국이름 ‘명옥’을 담고 있다. 그건 그동안 작가의 관심이 깊어지는 방향을 반영했을 것이다.
그간 틈틈이 신문 등지에 작가의 글이 나오는 대로 찾아 읽어온 터라 그의 행보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어머니와 같이 부모의 고향인 북한을 방문하고 쓴 글, 의사였던 아버지가 미네소타 작은 광산마을에 정착하게 된 사연 등등. 의사라면 편하고 안정된 이민자였을 것이라고 봤던 내 생각이 얼마나 짧은 거였는지. 아버지를 모델로 쓴 최근작 ‘The Evening Hero’를 사두고 아직 읽지는 못 했다.
결정적으로 작가는 내 딸의 동문 선배다. 소설에서 엘렌은 아버지가 밀어붙이는 대학 말고 두 대학을 더 놓고 진학 고민을 하는데 그 중 리버럴하기로 알려진 학교를 바라보는 호감이 엿보인다. 현실의 작가는 그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우리 딸애는 조금의 좌고우면도 없이 그곳 딱 한 군데에 지원해서 조기결정으로 들어갔다. 자기는 아니라고 하지만 딸의 잠재의식 속에 어려서부터 심어져 있던 것은 아닐까.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딸은 동문작가로 대학에 잠시 적을 두고 있던 작가와 교정에서 조우했다고 한다. 와 진짜? 울 아빠가 선생님 찐팬이라고 말해봤어? 나는 호들갑을 떨었고 애는 혀를 차며 한마디 했다. 아빠 쫌!
안다. 뭐라도 연결고리 있으면 호들갑 떠는 나를. 그래도 이 정도면 ‘쏘울 북’이라는 억지 조어를 이 책에 붙여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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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욱 워싱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