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가 읽은 명작

2024-02-13 (화) 송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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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 시공(時空)을 엮다

▶ 행복의 계절 <김용익 저>

내가 읽은 명작



* 김용익 작가의 작품 읽기: 단편을 모은 「푸른 씨앗」과 「꽃신」 단편집은 한글로 출판되어 알라딘 등에서 구입할 수 있고, 「꽃신」과 「겨울의 사랑」은 한글로 유튜브에 낭독돼 있다. 문화유산의 디지털 도서관 구축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인터넷 아카이브에서 「The Shoes from Yang San Valley」와 「The Happy Days」 영어 작품을 빌려 읽을 수 있고, 아마존사이트에서 그의 영문 작품집들을 조금 구할 수 있다.


못생기고 찌그러진 사과도 옆으로 눕혀 반을 가르면 별이 나타난다. 예상치 않은 곳에서 별을 마주친 설레임. 작품을 통해 만난 김용익(1920~1995) 작가의 세계로 들어서며 받은 첫 느낌이다.


워싱턴문인회 신년 초청 강연에서 한국계 미국 이민자의 문학을 주제로 한 박진임 교수의 강연은 그의 작품세계로 나를 인도했다. 통영에서 나고 자란 그를, 한 세기가 더 지나 미국 땅에서 만난 것이다. 그는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 영문과 졸업 후, 1946년부터 2년간 부산대학교에서 영어 강사로 출강하다 1948년 미국에 와, 플로리다대학, 켄터키대학, 아이오와 대학과 대학원 소설 창작부에서 수학했다. 미국의 예술가 지원기관에서 창작지원금을 받고 집필해, 1956년 미국 『하퍼스 바자(Harper’s Bazzar, N.Y)』에 「The Wedding Shoes(꽃신)」 발표로 작품 활동을 시작, 같은 해 이탈리아의 글로벌 잡지 『보테게 오스크레』에 「Love in Winter(겨울의 사랑)」를 게재했을 때, 세계는 ‘마술의 펜’이라 부르며 극찬했다 한다.

1957년 귀국해 1964년까지 고려대, 이화여대 영문과에서 강의했다. 이때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꽃신」이 한국어(현대문학.1963)로 출판되고, 『한국의 달』, 『행복의 계절』 (1960) 등 한국의 서정을 영어로 그린 작품을 국내외에서 출판했다. 1964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서일리노이 대학,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피츠버그 듀켄대학 등에서 소설 창작 강의를 하며 집필을 이어갔다.

그의 단편 「해녀」가 1970년 미국 중고등학교 영문학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고, 1982년엔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자료집’에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 세 작가로 강용흘, 김은국과 함께 소개되기도 했다. 1994년 고려대 초빙교수로 한국에 돌아가 머물던 중 1995년 4월 11일 별세해 고향 통영시 선영에 묻혔다.

그의 작품을 직접 읽고 싶어 인터넷에서 찾으니, 아마존 사이트에 그의 여러 작품 중 『The Happy Days』에는 “학자들은 이 저작물이 보존되고 재생산되어 일반 대중에게 공개될 만큼 중요하다 믿으며 우리도 이에 동의해 재출판한다”는 설명이 있다. 이 책 속엔 한국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해녀로 생계를 유지하던 어머니마저 바다에서 죽고 고아가 된 소년 ‘상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학교도 하나 없는 물가 마을에 사는 조부모, 삼촌 집에서 자라며 사촌형 ‘구’와 이발소 거울 옆에 칠판을 걸고 낮엔 이발소 일을 하고 밤엔 임시 학교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도리’ 선생과 함께 학교를 만들어가는 일들이 펼쳐진다.

학교 종과 건물을 지어 버젓이 학교에 다니고픈 아이들이 나무 땔감을 모아 팔고, 돌산의 돌을 옮겨 터를 만들고, 허기진 아이들은 할아버지가 씨앗 감자로 남겨둔 것을 몰래 먹는 등 아름다운 한국의 자연풍경, 풍속과 함께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학교에 가고 싶어 하던 상춘에게 “행복의 계절이 오면 학교에 가게 될 거다”라고 말했던 엄마를 기억하며 “엄마, 행복의 계절이 오고 있어요”라고 상춘이 속삭이며 이야기는 끝난다.

이 마지막 문장에서 2003년 이라크로 떠나 노동해방 시인에서 반전 사진작가로 거듭난 박노해 시인이 이라크에서 마주친, “전 언제 학교를 갈 수 있을까요? 학교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는, 전쟁통에 고아가 된 이라크 소년의 얼굴이 겹쳐졌다. 상춘의 마지막 속삭임이 폭격과 잿더미 속에서 떨며 울고 있을 팔레스타인과 우크라이나의 아이들에게 전달될 수 있기를, 암흑 속의 아이들이 눈을 들어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을 세며 그들에게도 행복의 날이 오고 있음을 볼 수 있기를….

한국전쟁 후 여전히 힘든 시기를 보내던 당시, 1960년 출판된 『행복의 계절』을 한국에서 쓴 김용익 작가의 마음이 시공(時空)을 넘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서울대학교 미학과, 경영대학원 졸업, 회계사, 금융분석가(CPA & CFA)
●워싱턴문학 신인문학상 수필부문 입상(2015), 제2회 코즈미안상 대상 수상(2020), 브런치 작가 https://brunch.co.kr/@saraha921
내가 읽은 명작


<송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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