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풍족함과 여유로움 잃은 미국 생활

2024-02-08 (목) 조환동 편집기획국장·경제부장
작게 크게
최근 오랜 미국 이민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에서 은퇴를 보내기 위해 ‘역이민’가는 한인 시니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최근 기자의 지인 부모도 40여년이 넘는 남가주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역이주했다.

지인 부모 입장에서도 오랜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치솟는 물가와 세금, 범죄와 홈리스 급증 등 악화하는 생활과 경제 환경을 고려할 때 마지막 여생을 조국에서 살고 싶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실제로 최근 주위를 보면 한국에서 은퇴 생활을 결정한 한인 시니어들이 꽤 있다.

이 부모는 모기지가 페이오프 된 남가주 주택을 90여만달러에 팔고 경기도 용인시의 20평 규모 신축 시니어 아파트를 약 4억원에 구매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에서는 이같이 시니어들을 위한 아파트 단지들이 계속 신축되고 있는데 식당과 산책로, 오락시설 등 각종 부대시설이 좋고 일단 일반 아파트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대신 한 달에 약 200여만원을 관리비와 식대로 내야하지만 소셜 시큐리티로 받는 2,500달러 연금으로 충분히 커버가 된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로 ‘킹달러’ 시대이고 장기간 이같은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달러를 바꿔 원화로 사용하면 모든 것이 미국에 비해 저렴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고 한다. 달러 강세 현상은 한국으로 여행을 가는 미주 한인들이 증가하고 있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 부모가 한국서 구입한 아파트도 달러로는 31만달러 정도밖에 안 된다.

서두가 길었지만 역이민을 고려하고 있는 한인이나 “미국에서 뼈를 묻겠다”는 한인 모두 한결같이 미국 생활의 각박함과 치솟는 물가에 따른 고통을 호소한다. 역으로 풍족함과 여유로움의 미국 생활이 사라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국으로 역이민 간 이 부모도 1978년에 미국에 이민을 왔으니 미국에서만 45년을 사신 어르신들이다. 기자도 미국에 이민 온지 50년 가까이 되는데 1970년대와 1980년대 미국이 그립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 때는 1달러 가치가 있었다. 100달러는 정말 큰 돈이었다. 1달러 대에 개솔린을 넣고 100달러를 들고 마켓에 가면 카트에 모두 담지 못할 정도로 푸짐한 양이었다. 보릿고개를 살아온 우리에게 고기는 또 얼마나 쌌는지. 정말 싼 가격에 질리도록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부모님 세대들이 힘든 이민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고생을 하면 자녀들은 한국 보다 훨씬 풍족하고 넉넉하고 여유로운 미국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에서 물가와 집값 등 물가는 꾸준히 올랐지만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가장 심각한 경제 문제로 부상했다.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RB·연준)가 장기간의 제로금리 정책을 포기하고 지속적으로 금리를 올린 것도 소비를 줄여 물가를 잡기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


연준은 연 2% 물가 목표가 가시권 안에 있다며 이르면 오는 5월이나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금리를 내리기 시작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렇지만 3~4차례 금리를 내려도 0.75~1.00%포인트에 불과하기 때문에 제로금리로 돌아가기에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0~0.25% 제로금리 시대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물가를 잡기 위해 올린 금리가 서민층에게는 모기지, 크레딧카드, 자동차 대출 등에서 높은 이자 비용으로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주부들은 “마켓 가기가 겁난다”고 하고 직장인들은 점심 비용을 아끼기 위해 도시락을 싸오거나 패스트푸드로 허기를 채우는 것이 현실이다.

아내에게 “저녁하기도 귀찮은데 간단히 순두부나 먹고 오자”고 말했다가 한마디 들었다. 아내는 “순두부 2개만 시켜도 세금과 팁을 지불하면 50달러에 육박한다”며 “얼마나 많이 벌어온다고 그렇게 외식을 자주할 수 있느냐”는 핀잔을 들었다.

연방 노동부에 따르면 인플레 완화에도 식료품 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서민층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식료품 가격은 지난 4년간 25%나 급등했다. 설탕은 최근 6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고 지난 4년간 고기와 생선, 계란 등도 28%나 증가했다. 채소 가격은 22%, 유제품 역시 21%나 각각 올랐다. 체감 외식비용은 훨씬 더 높다.

소득 대비 물가가 더 많이 오르면서 많은 미국인들의 크레딧카드 사용은 급증하고 있다.

뉴욕연방준비은행은 지난해 4분기 크레딧카드 연체율(90일 이상 연체)이 6.36%로 1년 전보다 2.35%포인트 상승했다고 밝혔다. 특히 18∼29세 청년층의 카드 연체율이 9.65%로 가장 높았고, 30대의 연체율도 8.73%로 높았다. 가계부채는 17조5,030억달러로, 1년 전보다 6,040억달러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오는 11월 대선 승리 가능성이 엄연한 현실로 다가오는 것도 미국민의 경제에 대한 불만이 가장 큰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유럽이나 일본 같은 고물가, 고비용 시대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이 작금 미국이다.

<조환동 편집기획국장·경제부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