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주 사이 하원 공화당은 상원에서 합의된 이민 관련 법안을 날려버렸다. 그리곤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법원에서 이미 ‘불법’ 판정을 받은 국경 단속 강화 조치를 채택하라고 촉구했다. 도널드 전 대통령이 사주를 받은 공화당이 대선이 끝날 때까지 이민문제를 물고 늘어지려는 게 아니냐는 냉소적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이 모두가 공화당이 이민제도에 무지한 탓에 벌어진 일은 아닐까?
공화당 의원들은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지원 안을 볼모로 잡은 채 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민 문제에 대한 백악관과 민주당의 양보를 요구했다. 하지만 몇 달간 이어진 실랑이 끝에 민주당이 마침내 두 손을 들자 하원 공화당 의원들은 갑자기 말을 바꾸었다. 이건 이민문제에 대한 합의를 아예 원치 않는다는 뜻이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공화-루이지애나)을 비롯한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국경 단속을 위해 새로운 법을 제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가 시행했던 행정명령을 복원시키기만 하면 간단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억지다. 존슨 하원의장은 “성실한 협상 상대로 인정받고 싶다면 바이든 대통령은 그저 행정명령에 서명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이민정책 싱크탱크인 ‘마이그레이션 폴리시 인스티튜트’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미 불법이민 단속과 관련한 500여 건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가 4년간 내놓은 이민관련 행정명령보다 많은 건수다. 그럼에도 아직껏 불법이민 물꼬를 틀어막지 못한 것은 행정명령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바이든이 하원 공화당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그들이 되살리길 원하는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대부분 법원에서 불법판정을 받았다. 뉴욕대 정책윤리연구소는 트럼프 시절에 나온 주요 이민관련 조치들 가운데 35건이 법원으로 넘겨졌고, 전체의 94%에 해당하는 33건이 불법판정을 받았거나, 주무기관에 의해 소송이 취하됐다고 밝혔다. 공화당이 지명한 판사들조차 재판에 회부된 트럼프의 이민관련 행정명령 중 90%에 ‘불법’ 판정을 내렸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존슨이 복원을 요구한 트럼프 시절의 구체적 이민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멕시코 대기’(Remain Mexico) 행정명령은 아직도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이 정책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결은 그리 중요치 않다. 왜냐하면 이 프로그램이 밀입국을 효과적으로 막아냈는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이라곤 멕시코 대기 프로그램 탓에 불법이민자들이 강간, 납치, 고문을 비롯한 숱한 위험에 노출됐다는 것뿐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앞으로 나올 미국 연방법원의 판결에 상관없이 미국이 대기 프로그램을 재가동할 경우 더 이상 미국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멕시코 정부의 강경한 선언이다.
존슨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국경장벽 건설 재개도 요구했다. ‘아메리칸 이미그레이션 카운슬’ 의 정책국장인 아론 레이치린-멜닉은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대통령의 결단이 아니라 예산부족”이라고 지적했다. 하원 공화당도 필요한 예산을 제공할 의사가 없는 듯 보인다.
무슨 얘기인가? 지난해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이 H.R.2로 알려진 대단히 엄격한 이민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H.R.2는 기본적으로 의회 통과가능성이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유권자에게 자신들이 해당 사안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공화당이 상정한 법안이었다. 그럼에도 존슨은 최근 H.R.2만이 검토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이민관련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H.R.2 법안은 바이든에게 국경장벽 건설 재개를 요구하면서도 필요한 경비를 따로 제공하지 않는다. 레이치린-멜닉에 따르면 지난 2019 회계연도 지출안에 반영된 국경장벽 관련 예산은 이미 소진됐다.
존슨 하원의장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이른바 ‘체포후 석방’ 정책의 폐기를 요구한다. (오바마 시절에 마련된 ‘체포후 석방’은 당국에 적발된 불법이민자라 하더라도 체류 중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일단 석방한 후 이민법원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미국에 체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정책이다.) 존슨의 요구대로 이 정책을 폐기할 경우 이들이 신청한 난민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망명신청자들을 수용할 장소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현행법 어디에도 이들에게 침상을 제공하기에 충분한 예산이 잡혀있지 않다. H.R.2 역시 이같은 목적에 사용될 자금을 단 한 푼도 제공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바이든이 펜을 한번 놀리기만 하면 얼마든지 채택이 가능하다“는 하원 공화당의 이민정책들은 한결같이 바이든의 펜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 바깥쪽에 위치한다. 공화당의 요구가 관철되려면 양당합의로 마련된 법안이 의회 입법과정을 통과해야 하는데 공화당은 법안심리 자체를 거부한다.
아마도 존슨과 공화당 동료의원들은 의원들의 협조 없이도 바이든 혼자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결국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바이든의 무능을 드러내려는 시도일 수 있다. 아니면 트럼프의 불법행동에 익숙해진 나머지 바이든 역시 가끔씩 선을 넘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믿는 것인가?
결국 문제는 공화당의 무능과 무지와 억지다. 지금 우리의 눈앞에는 이를 확인해줄 정황이 전개되고 있다. 하원 공화당은 이번 주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국토안보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공개했다. 그러나 공화당의 탄핵소추안은 마요르카스의 통제밖에 있는 국무부의 조치들을 문제 삼는다. 국토안보부와 국무부는 완전히 다른 정부 부처다. 하긴 누가 이 두 부처의 장관을 구분할 수 있을까?
공화당의 지적대로 우리의 이민시스템은 혼란스러운 게 사실이다. 누구도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하더라도 비싼 세비를 받는 정치인들, 특히 이민문제를 2024 대선의 핵심 쟁점으로 내건 정당의 의원들은 이처럼 복잡한 일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해야 마땅하다.
캐서린 램펠은 주로 공공정책, 이민과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는 워싱턴포스트지의 오피니언 칼럼니스트이다. 자료에 기반한 저널리즘을 강조하는 램펠은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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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